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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덕분에? 어사 박문수 재조명할 편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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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덕분에? 어사 박문수 재조명할 편지 찾았다

입력
2018.02.27 13:3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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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종중서 사라진 1000여점

문화재 공소시효 착각한 업자

매매과정서 도난 사실 밝혀져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공개한 2008년 도둑 맞았다가 10년 만에 회수된 어사 박문수 서신을 비롯한 간찰 1,047점. 한소범 기자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공개한 2008년 도둑 맞았다가 10년 만에 회수된 어사 박문수 서신을 비롯한 간찰 1,047점. 한소범 기자

“경상과 전라 지역에 기근이 들어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으니 살펴 주시옵소서.”

때는 조선 영조 8년(1732년) 마흔 둘의 어사 ‘박문수’는 전라도 운봉 일대를 시찰한 뒤 왕에게 이런 보고문을 올린다. 절차를 무시한 진언이었지만 박문수를 신뢰한 영조는 지역 상황을 자세히 조사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박문수에게 외숙부 이경좌가 보낸 편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지금껏 각종 설화 등을 통해 알려져 있던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1691∼1756)의 실제 행적과 당시 시대상을 알려줄 역사적 사료가 공개됐다. 공교롭게도 도난 덕분이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무허가 문화재매매업자(속칭 나까마) 김모(65)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은닉)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의견 송치하고, 김씨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자택 창고에 감춰 둔 간찰(편지) 1,047점을 회수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간찰은 1700~1800년대 후반까지 약 200년 동안 박문수와 친지, 또 그 후손들이 주고받은 한문 편지들로, 2008년 8월 충남 천안 고령 박씨 종중 재실에서 도둑 맞았던 것들이다. 당시 도둑은 재실 창살을 자르고 침입해 보관 중이던 간찰을 훔쳐 달아났지만 후손들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게 죄스러워 신고도 하지 못한 채로 지냈다.

통상 도난을 당한 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 도난 공소시효(10년)가 지난 뒤에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김씨는 문화재 공소시효를 착각, 집에 숨겨 둔 간찰을 2014년 6월 문화재매매업자 나모(70)씨에게 팔았다가 덜미가 잡혔다. 나씨가 이 간찰을 다시 국사편찬위원회에 팔려고 하는 과정에서 도난 사실이 드러나 경찰 수사로 이어진 것이다. 김씨가 경찰 조사에서 다른 매매업자로부터 간찰을 샀다고 주장했지만 지인에게 위증을 부탁하는 등 거짓으로 드러났다. 다만 경찰은 절도 혐의는 입증이 어려워 적용하지 못했다.

박문수가 직접 받은 서신 71편엔 ▦기근과 분쟁에 대한 안타까움 ▦박문수 건강에 대한 가족들 염려 ▦당시 시대상 등이 담겨 있다. 도난 때문에 그간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던 사료 가치를 살필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간찰을 분석 중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소설 속 영웅화한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박문수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라고 평했다. 간찰은 박문수 초상화(보물 1189호) 등 다른 박문수 유물이 보관된 천안박물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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