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tyle="margin-left: 15pt">[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일본 간판 공격수 출신 미우라 가즈요시(요코하마FC)는 1967년생이다.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보다 한 살이 많고, 고정운 SPOTV 축구해설위원보다는 한 살이 적다. 미우라는 감독이나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해야 할 나이에 여전히 축구화를 신고 있다.
<p style="margin-left: 15pt">미우라는 지난 28일 게즈덴키스타디움서 열린 J2리그(일본 2부리그) 미토와 원정경기에서 후반 49분 결승골(시즌 3호골)을 터뜨리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종전 J2리그 최고령 득점 기록을 48세4개월2일로 늘렸다.
<p style="margin-left: 15pt">지천명(知天命•50세)을 눈앞에 둔 미우라는 월드컵 출전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는 2013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선수라면 축구화를 벗는 순간까지 대표팀 승선을 꿈꿔야 한다"고 말했다.
<p style="margin-left: 15pt">그는 유독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미우라는 19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때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에 패배를 안겼지만, 이라크를 넘지 못해 본선 좌절의 고배를 마셨다. 이어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는 일본을 사상 첫 본선으로 이끌었으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눈 밖에 나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p style="margin-left: 15pt">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 미우라는 국내 선수 가운데 황선홍과 비교되곤 했다. 황선홍처럼 정통 스트라이커 계열은 아니었지만, 득점력과 공간침투능력 등 전반적인 공격력만큼은 최고 수준이었다.
<p style="margin-left: 15pt">황선홍이 득점에 좀 더 특화된 선수였다면 미우라는 미드필더와 최전방을 오가며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던 선수였다.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브라질 유학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센스는 미우라를 완성형 공격수로 만들었다.
<p style="margin-left: 15pt">미우라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본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미우라가 시즌 2호골을 터뜨렸을 때 현지 스포츠신문 닛칸스포츠와 석간 닛칸겐다이 등은 미우라의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p style="margin-left: 15pt">미우라는 후배들에게 해외진출의 길을 터준 선수이기도 하다. 그가 1994년 이탈리아 세리에A 제노아에서 뛴 이후 나카타 히데토시(이탈리아), 오노 신지(네덜란드), 이나모토 준이치(잉글랜드), 카가와 신지(독일) 등 일본 출신 유럽파들이 꾸준히 배출됐다. 미우라는 이탈리아 세리에A AC페루자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나카타와 함께 가장 위대한 일본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p style="margin-left: 15pt">일본 축구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A매치 89경기에 나서 55골을 기록한 미우라는 당장 은퇴해도 '축구영웅'으로 대접받을 만한 선수다. 하지만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백전노장'으로 K리그 통산 700경기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골키퍼 김병지(45·전남 드래곤즈)와도 닮아 있다.
<p style="margin-left: 15pt">월드컵 본선 경기 출전이라는 미우라의 꿈은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현역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2부 리그에서의 일이다. 게다가 나이가 지나치게 많아 대표팀 선수로 발탁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향해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도전'이라는 스포츠 정신을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style="margin-left: 15pt">사진=미우라 가즈요시(요코하마FC 페이스북).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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