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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지구 열 바퀴를 돈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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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지구 열 바퀴를 돈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는 마법

입력
2017.11.10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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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폰에 들어간 부품의

이동거리 따져보면 지구 열 바퀴

물류·교통 스펙터클한 세계 조명

클릭 한번에 문 앞까지 가져다줘

움직이고 옮기고 배송하는 행위

기술이 발달해도 세계의 중심에

아침에 마신 커피와 저녁에 배달시킨 피자는 각각 지구 몇 바퀴를 돌아 우리에게 왔을까. 미국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흄스는 신작 ‘배송 추적’에서 세계의 아래 빙산처럼 숨겨진 교통과 물류의 세계를 조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침에 마신 커피와 저녁에 배달시킨 피자는 각각 지구 몇 바퀴를 돌아 우리에게 왔을까. 미국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흄스는 신작 ‘배송 추적’에서 세계의 아래 빙산처럼 숨겨진 교통과 물류의 세계를 조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배송 추적

에드워드 흄스 지음ㆍ김태훈 옮김

사회평론 발행ㆍ420쪽ㆍ1만6,000원

피자에 파인애플이 합당한가. 뜨거운 파인애플을 올린 하와이안 피자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을 것인가, 찍어 먹을 것인가’ 만큼 첨예한 화두다. 그러나 덥힌 과일에 대한 호불호 논쟁에, 피자 생산업체들은 생각보다 관심이 많지 않다. 전 세계에 지점을 가진 도미노 피자의 사업대상은 피자가 아니라 물류와 운송이다. 이들의 주 수입은 재료를 만들어 각 지점으로 운송하는 데서 나온다. 파인애플이 화두에 오르는 건 아마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파인애플을 들여오는 항만이 적체를 일으켰을 때뿐일 것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흄스의 ‘배송 추적’은 오늘날 현대인의 일상 아래 파이프관처럼 묻힌 교통과 물류의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전작 ‘102톤의 물음’(2013)에서 쓰레기를 화두로 세계의 은밀한 회로를 들췄던 저자는 이번에도 특유의 집요함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이 문제를 파고든다. 책은 교통과 물류가 현대사회의 가장 아찔한 곡예이자 기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잘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말한다.

“상하이에 있는 공장에서 남부 캘리포니아, 뉴저지, 덜루스에 있는 매장까지 치약을 운송하는 능력, 그것도 하루에 200억 회에 걸쳐 안정적으로 저렴하고 신속하게, 추적 가능한 방식으로 운송하는 능력은 인류가 이룬 가장 압도적인 성취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이 모든 일은 사실상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아무런 환호 없이 이뤄진다.”

전화 한 통으로 문 앞까지 배달 오는 피자의 여정을 살펴보자. 저자의 아들이 주문한 피자는 미국 도미노 피자의 16개 공급사슬센터(피자 재료를 가공해 각 지점에 운송하는 보급소)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 공장에서 시작한다. 새벽 4시 모차렐라 치즈를 실은 트럭 2대가 북쪽으로 375㎞ 떨어진 르무어 지방에서 도착한다. 토마토 소스는 450㎞를, 페퍼로니와 소시지, 햄, 살라미는 2,250㎞를, 밀은 2,410㎞를, 피자 상자는 3,540㎞의 거리를 이동해 온다. 새벽 5시 오븐이 예열되고 피자 반죽이 시작되면 오후 2시에는 트럭에 피자 반죽과 토핑을 실어야 한다. 운송기사들은 매장이 문을 닫은 동안 재료를 매장 안에 채워 넣어, 다음날 아침 바로 피자 조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후 8시 첫 트럭이 출발한다. 가장 먼 매머드마운틴의 스키 리조트 매장까지의 거리는 480㎞. 저자의 아들이 시킨 피자를 다 먹기도 전에, 다음날 배달할 피자의 재료가 이미 저자의 동네를 향해 출발한 셈이다.

교통과 물류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에선 벗어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교통과 물류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에선 벗어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피자의 여정은 다른 물건들에 비하면 간소한 편이다. 커피 원두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오고, 아이폰의 모든 부품 이동거리를 더하면 지구 열 바퀴에 육박한다. 저자는 이처럼 스펙터클한 광경을 제시하며 관심을 촉구한다. 매일 전세계 수천만명을 이동시키고 수억 개의 물품을 문에서 문으로 옮기는 이 방대한 체계가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감시하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교통의 비밀을 파헤치는 탐정 이야기로 보면 된다. 단지 범인을 밝히는 게 아니라 숨겨진 속성과 장소, 통념, 그리고 즉시 구매, 당일 배송, 교통 체증의 세상을 이끄는 체계를 조명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이 다르다.”

저자가 지목한 범인 중 하나는 자동차다. 2011년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카마겟돈’ 사태가 대표적이다. 시는 평소 정체가 극심했던 405번 도로에 새 차선을 붙이는 공사를 하기 위해 주말 동안 도로를 폐쇄했다. 사람들은 역대 최고의 교통 혼잡을 예상하며 ‘차(car)’와 ‘아마겟돈(Armageddonㆍ혼돈)을 합성한 ‘카마겟돈’이란 말을 만들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말 동안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 대중교통, 카풀을 이용한 덕에 평소보다 체증이 완화한 건 물론이고 매연은 10%, 도시 전체 오염물질도 25%나 감소한 것이다.

차가 필수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는 각성은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우리가 카마겟돈과 카마헤븐(carmaheavenㆍ차와 천국의 합성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한다. 자율주행 자동차와 3D 프린팅 등 미래의 기술이 현 물류 체계를 어떻게 바꿀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움직이고 옮기고 배송하는 일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클릭하고, 구매하고, 먹고, 마시고, 기름을 넣는 것처럼 우리가 실행하고 건드리는 많은 행위 속에 수천, 아니 수만 킬로미터의 이동거리가 매우 명백하고도 깊이 숨겨진 형태로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도어투도어(door-to-door) 국가에 산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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