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뼈다귀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ㆍ조은수 옮김
비룡소 발행ㆍ50쪽ㆍ8,000원
꼬마소녀 돼지 펄은 하교 후 숲에서 말하는 뼈다귀를 만난다. 인간의 말과 노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낼 줄 아는 뼈다귀는 자신이 마귀할멈과 살았으며 이젠 마귀할멈과 사는 것이 지겹다고 말한다. 펄은 뼈다귀와 친구가 되고 함께 살기로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여우가 나타나 펄과 뼈다귀를 잡아간다. 여우가 펄을 잡아먹기 위해 화덕에 밀어 넣으려는 순간, 뼈다귀가 자신도 모르게 주문을 외고 여우는 생쥐만 해져서 도망간다. ‘뼈다귀가 멋져봤자’라고 벼르면서 읽었는데, 읽고 보니 이 뼈다귀 참말로 어메이징하다. (원제가 ‘The amazing bone’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아기였을 때부터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대체로 노동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었다. 읽어준 책을 아이가 좋아하면 그것이 좋을 뿐 그림책 자체를 즐기지는 못했다. 어떤 책은 별 인상 없이 휙 지나가 버리고 어떤 책은 아이와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서 조금은 기억에 남기도 했다. 그러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다. 평범한 설정으로 시작해 기발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따뜻하고 낙천적인 플롯 속에 ‘뼈’가 숨어있다.
딸은 이 그림책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책에서 진술되지 않은 뼈다귀의 정체와 사연에 대해 궁금해 했으며,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근데 뼈다귀는 기억상실증에 걸렸었어? 왜 자기가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살았대?” “어떻게 마귀할멈이랑 만나서 같이 살게 됐지?” “뼈다귀가 살았을 적엔 무슨 동물이었을까?”
예전 같았으면 대충 대답해 주고 말았을 텐데, 이상하게 이 그림책은 어른의 상상력도 자극하는 데가 있었다. “응, 엄마는 왠지 이 뼈다귀가 살았을 적에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을 것 같아.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할멈 알지? 뼈다귀는 그 마귀할멈에게 잡아먹혔던 불쌍한 소녀였을 것 같아. 마귀할멈은 나쁜 짓만 해서 친구가 없었지. 그래서 이 불쌍한 소녀의 뼈에 마법을 걸어 이야기 상대로 삼았던 것 아닐까? 여우가 펄을 화덕에 밀어 넣으려고 했지? 소녀가 옛날에 당했던 거랑 너무 비슷하잖아? 그래서 뼈다귀가 펄을 그렇게 구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아이에게 말하기엔 좀 잔인한 상상인지라 말을 늘어놓고는 조금 후회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 “엄마, 그 뼈다귀는 마귀할멈이 잡아먹은 소녀가 아니라 바로 그 마귀할멈이야” “뼈다귀가 마귀할멈이랑 살았다는데, 어떻게 뼈다귀가 마귀할멈일 수가 있어?” “엄마, 마귀할멈이 헨젤과 그레텔 때문에 화덕에 들어가서 죽었잖아. 근데 그 마귀할멈한테 동생이 있었어. 그 동생도 마귀할멈이야. 그 동생이 언니의 뼈랑 말동무하면서 살았던 거야” “그런데 그 뼈다귀가 어린이들을 잡아먹던 마귀할멈이었다면 왜 펄을 구해줬어?” “응, 마귀할멈은 뼈다귀가 된 후에 자기가 마귀할멈인 걸 까먹고 살았어. 근데 여우가 펄을 화덕에 밀어 넣으려고 할 때 자기가 옛날에 했던 나쁜 짓이 기억이 난 거야. 근데 뼈다귀는 벌써 펄하고 친해졌잖아? 그래서 펄을 구해주고 옛날의 나쁜 행동을 뉘우친 것 아닐까”
좋은 그림책의 힘이다. 좋은 그림책은 어른도 상상하게 만들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게 만든다. 이때부터 마음 속 도서관에 그림책을 품기 시작했다.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