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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 생활 20년 손 털고 나온 ‘왕언니’의 바람

입력
2016.07.2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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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상반기 대한민국을 흔든 커다란 이슈 중 하나는 성 매매 스캔들이다. 인기 연예인과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성 매매 사건은 선정적 언어로 대중에게 소비됐다.

이슈의 중심에 유명한 성 구매자들이 있다. 덩달아 성 판매자인 여성들의 얘기도 씹던 껌처럼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와중에 사실 여부를 떠나 못된 죄인이 된 이들의 인권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 함께 유린됐다.

‘성 매매 근절’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동의하며 호응한다. 문제는 자의든 타의든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성 매매 종사 여성들의 짓밟힌 인권에 대해선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며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그늘 속 존재들이다 보니 인간으로 누려야 할 기본권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짓밟히고 있다. 따라서 성 매매 근절은 잘못된 사회 문제를 바로 잡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짓밟힌 인권 회복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빠를 수도 있다. 접근법을 찾기 위해 관련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이른바 ‘매직 미러’라 불리는, 한 쪽에서만 보이는 유리로 만들어진 유흥업소의 대기실에서 ‘언니’들이 선택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각 업소들은 가게에 ‘언니’들이 많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각종 게시판에 이 같은 사진을 첨부한 홍보성 글들을 무수히 올린다.
이른바 ‘매직 미러’라 불리는, 한 쪽에서만 보이는 유리로 만들어진 유흥업소의 대기실에서 ‘언니’들이 선택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각 업소들은 가게에 ‘언니’들이 많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각종 게시판에 이 같은 사진을 첨부한 홍보성 글들을 무수히 올린다.

“인권요? 성 매매 현장에 무슨 인권이 있어요.”

이달 초 부산에서 만난 봄날(별명)은 취재 의도를 밝혔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한때 성 매매 여성이었으나 지금은 커밍아웃을 한 뒤 ‘꿈에 그리던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는 유흥업소 서바이벌 가이드를 표방한 ‘화톡’이라는 블로그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업소 여성’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코너인 ‘진보적인 왕언니’를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부산으로 찾아가 어렵게 만난 그는 까칠한 말투와 달리 푸근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들려준 과거는 억센 부산 사투리처럼 거칠었다.

유혹 : 생계에 내몰린 맏딸, 유흥업의 덫에 걸리다

봄날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불우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지만 먹고 살기 힘들었다. 장애인이었던 아버지는 가슴 속에 응어리진 사회적 패배감을 집에 와서 폭력으로 풀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운영하던 화장품 대리점이 망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선생님이 “학비도 내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수학여행을 가냐”며 어린 마음에 대못을 박은 일도 학교를 그만두는데 한 몫 했다.

기숙사형 미싱공장에 취직한 봄날은 거기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의 “놀러오라”는 권유를받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주점인 가라오케에 갔다. 미싱공장 월급이 16만원 이었는데 가라오케에서 하루 저녁 노래 부르고 술을 마시며 매상을 올려 준 대가로 9만원을 받았다. 충격이었다.

이후 친구와 업주의 집요한 유혹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17세 때 미싱공장을 나와 가라오케를 선택했다. “고민이 많았지만 돈을 갖다 주니 좋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렇게 2년여를 거기서 일했죠.”

이후 업주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제대로 돈을 주지 않고 소위 손님들과 잠자리를 갖는 ‘2차’를 나가라고 강요했다. 줄어든 팁으로 집 안 생계와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들었다. 20세 때 가라오케를 나온 봄날은 대전의 유흥주점으로 옮겼다.

봄날의 가라오케 경력을 눈 여겨 본 업주는 ‘2차 없는 룸살롱’이라며 안심시키더니 당장 생활비로 쓰라며 100만원을 빌려줬다. 바로 빚의 시작인 ‘선불금’이었다. “2차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돈 벌어서 차도 사고 집도 산다는 업주의 말을 믿었죠.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2차 강요와 함께 빚을 갚으라는 독촉이 이어졌어요.”

성매매 여성들은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서 일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게 된다. 사진은 명품을 든 유흥가의 성매매 여성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여성혐오 비판을 받았던 이완 작가의 합성 사진 작품 ‘한국여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성매매 여성들은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서 일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게 된다. 사진은 명품을 든 유흥가의 성매매 여성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여성혐오 비판을 받았던 이완 작가의 합성 사진 작품 ‘한국여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착취 : 한 달에 500만원을 벌어도 ‘장부에만 존재하는 돈’

그렇게 빚에 치인 봄날은 동료의 추천으로 소개소를 찾아갔다. 소개소는 ‘언니’들을 전국 각지의 룸살롱에 연결해 주고 소개비를 받는 곳이다. 이 때부터 그는 전주, 청주, 대천, 제주 등 전국을 떠돌았다.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지출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유흥업소 여성들이 명품을 사려고 일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손님들 눈에 들어 돈을 벌려고 비싼 옷을 사서 꾸미는 거에요. 옷이 그 것 밖에 없냐는 업주의 등쌀과 ‘상표’까지 들춰보며 핀잔을 주는 손님들 때문에 옷을 사지 않을 수 없어요.”

심지어 업주들은 옷값과 화장품값뿐 아니라 미용실, 택시비 심지어 속옷까지 업소에서 지정한 곳에서 비싸게 사라고 강요했다. 그러면서 업주들은 상점에서 소개비를 챙긴다. “이런 구조를 통해 업주들은 여성들에게 나간 돈을 고스란히 회수해요. 그렇다 보면 한 달에 500만원 이상 벌어도 일하다 보면 택시비 1,2만원이 없어서 업소에서 돈을 꾸게 돼요.”

더러 손님들이 “아가씨들이 술을 버렸네”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네”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술값 계산을 거부하면 고스란히 동석했던 여성들의 빚으로 얹힌다.

이처럼 상당수 룸살롱들이 계속 과소비를 하게 만들어 접객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구조다. “일을 그만 둘 때 보니 한 벌에 100만원 이상 하는 ‘홀 복’(유흥업소에서 입는 드레스)이 여러 보따리였어요.” 그러니 비싼 옷과 구두, 가방들이 반가울 리 없다. 봄날은 일을 그만두며 그렇게 사들인 수 많은 옷과 구두, 가방들을 모두 버렸다.

성구매자와 업주, 그들의 경제 논리 앞에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사진은 영화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에 나온 성매매 장면 스틸컷.
성구매자와 업주, 그들의 경제 논리 앞에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사진은 영화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에 나온 성매매 장면 스틸컷.

유린 : 신체포기각서로 변하는 화대… 업주에겐 돈 버는 도구일 뿐

빚도 빚이지만 인권 유린으로 이어지는 인간적 모멸감이 가장 힘들었다. “룸살롱에는 유명 스타는 물론이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와요. 그런데 그들에게 ‘언니’(성 매매 여성)는 사람이 아니에요. 성적 욕구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도구죠.”

여성들을 도구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사람다운 대접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는 곧 갖가지 ‘진상’으로 나타난다. “룸 안에서 언니들 의사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만지고 성 관계를 가지려 드는 경우는 흔한 일”이라고 했다. 이를 거부하면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강제로 옷을 벗기는 남성을 피해 달아나던 여성이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휘두른 맥주병에 머리를 맞아 피투성이가 된 사례도 있다.

특히 성 매매 여성들을 향한 남성들의 폭력은 2차 장소인 모텔 등에서 많이 발생한다. 단 둘만 있는 방에서 일부 남성들은 “얼굴에 오줌을 싸달라”는 등 갖가지 변태 행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무리 직업 여성이라지만 그런 변태 행위가 좋을 리 없다. 이때 거부하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렇지만 성 매매 여성들은 대부분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다 보니 폭력을 당해도 고소를 하지 못한다. 업주들도 성 매매 단속에 걸려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여성들이 처참하게 두드려 맞아도 신고를 하지 못하게 막고 합의를 종용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인 부산 완월동을 재생하기 위한 ‘완생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박조건형씨가 그린 그림. “그런데 이 병원은 언니들의 건강을 위한 병원일까, 구매자의 건강과 업주의 수익을 위해 언니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곳일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박조건형씨 제공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인 부산 완월동을 재생하기 위한 ‘완생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박조건형씨가 그린 그림. “그런데 이 병원은 언니들의 건강을 위한 병원일까, 구매자의 건강과 업주의 수익을 위해 언니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곳일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박조건형씨 제공

환생 : “성매매 경험은 인생의 한 부분일 뿐… 내 삶을 지배하진 못해”

그렇게 봄날은 꽃다운 20대를 룸살롱에서 보내고 29살 때 그만 뒀다. 그 뒤로도 38살까지 티켓다방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100만원이었던 빚은 20년 새 1억2,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타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지하철을 탔는데 혹시 룸살롱에서 일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두려웠고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비슷한 일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누군가 “경기도 어디에서 본 것 같다”는 한마디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봄날은 생각을 바꿨다. 3년 전 “성 매매 종사자였다”고 공개하고 지난 상처를 추스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진보적인 왕언니’ 코너를 맡아 글을 연재한 지도 벌써 3년째다. “글을 쓰는 게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떠오르기 싫은 기억을 헤짚다 가 괴로워서 혼자 울고 불고했죠. 힘들게 쓴 글들 모두 지워버리고 술을 마신 적도 많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 덕분일까. 이제는 과거의 짐을 어느 정도 덜었다. “성 매매는 제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한 부분이에요. 그렇지만 그 기억이 나를 지배하고 좌우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과거를 인정하되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마음을 먹기까지 아주 힘들었어요.”

봄날은 일을 그만둔 뒤 자궁을 적출했다. 이를테면 직업병인 셈이다. 자궁을 포기하는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대신 희망과 행복을 되찾았다.

“업소 생활을 할 때 무조건 돈을 많이 벌면 잘 살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막 살기도 했구요. ‘진상 손님이나 내 몸에 해코지 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희망의 전부였죠. 하지만 이제는 진짜 희망을 갖게 됐어요.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 지 몰라요. 그래서 요즘에는 수면제도 먹지 않고 정신과에도 가지 않으며 업소 생활을 버텨낸 제 자신이 스스로 대견해요.”

봄날이 과거를 반추하며 강조한 것은 성 매매 여성들 스스로 굴레를 끊으라는 것이다. 그게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그들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일을 그만두면 갈 곳이 없는데 빚은 어떻게 하며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면 답은 유흥업소로 돌아갈 수 밖에 없어요. 그 바닥에서 진상 손님을 피할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빚을 갚아주지도 않죠. 사람답게 살려면 스스로 박차고 나와야 해요.”

봄날은 지금도 성매매 종사자로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그 일을 선택했으니 술집 여자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낙인을 스스로 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니들에겐 잘못이 없어요. 의지와 상관 없이 옭아매는 구조가 문제에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건강을 챙겨야 해요. 유흥업소 일 하다 보면 남는 것은 병든 몸 밖에 없어요. 나중에 무슨 일이든 해서 먹고 살려면 건강이 중요하죠.”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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