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집 정원에는 많은 나무들이 있다.요즘은 병실과 거실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 거의 못 나가보지만 그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매화 소나무 철쭉 석류나무 동백 등 300그루는 넘을 것이다. 화분에 담은 조그만 화초들도 많다.
고 정주영(鄭周永) 회장이 준 소나무 중에서도 아직 4~5그루는 살아있다. 전에는 이 나무들을 직접 가꾸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처음 나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전국을 돌며 극단에서 사회를 본 1970년대 중반이었다.
다른 연예인들은 공연이 없는 날 화투를 치며 소일했지만 나는 그 몇 마디 안 되는 대사를 외우기 위해 인근 야산으로 달려갔다.
같은 대사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던 당시 나의 유일한 관객이 바로 나무들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무랑 친해졌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나무와 분재에 관심을 둔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방송과 지방업소 출연으로 바삐 보내던 그 시절, 말 없는 나무와 풀을 보면서 커다란 위로와 교훈을 받았다.
못난 사람보다 몇 십 배는 훌륭한 것이 나무였다. 몇몇 지방업소는 내가 분재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출연 보너스로 예쁜 분재를 보내주기도 했다.
나무는 사람과 비슷한 것 같다.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면서 세심하게 보살피면 반드시 갑절 이상으로 보답을 해준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년 이상 투자를 해야 하는 것도 비슷하다.
철 따라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 또한 사람 인생을 빼 닮았다. 힘든 정치 생활을 할 당시에도 나는 이 나무들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다.
요즘은 이 나무들 대신 독자들 편지가 내게 위안을 건넨다. 이런 약을 드셔야 한다, 암을 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상황버섯이 특효약이다….
그들이 보내준 처방이 고마울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분들에게 어떠한 것도 해준 게 없다. 오늘 다시 몇 통의 편지를 소개할까 한다.
‘저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이곳 신문을 읽게 돼 이런 글을 올립니다. ‘차가’라는 자연산 버섯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의 작품 ‘암병동’에서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달여먹은 바로 그 버섯입니다. 차가 버섯은 암질환 특히 위암 간암에 매우 뛰어난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여러 유명한 의사분들이 처방하실 줄 알고 있지만 옛 시절 팬으로서 병이 쾌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최경일씨)
‘오가피 엑기스를 복용하십시오. 하루 두 번 60~80㎖씩 아침 식사 전과 주무시기 전에 드세요. 그리고 벌침 요법을 합니다. 벌침은 2~3일에 한번씩 경락 위주로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한 공기와 신선한 물입니다. 물은 보리차를 드시되 꼭 녹차 잎을 넣어 드십시오. 어쨌든 민간요법 중 과학적 근거가 마련된 대체의학을 이용해보시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하루 속히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대체의학씨)
‘오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맥주를 8병이나 마셨습니다. 그만큼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자리에 편히 눕지도 못한 채 일년 만에 100㎏이던 몸무게가 49㎏까지 야위셨죠. 지켜 보겠습니다. 당신이 맘이 약해지면 한국의 코미디언은 다 죽는 겁니다. 전 웃음을 잃어버린 지 이미 5년째입니다.“(남상옥씨)
‘선생님 부디 병환이 완쾌되셔서 다시 한번 저희 곁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저희 아들과 딸에게 우리나라에는 선생님 같은 훌륭한 희극배우가 있었고 아빠는 선생님의 흉내를 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선생님과의 인연을 20년, 아니 40년 그 이상으로 늘리고 싶습니다.’(김대준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