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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도 주목했을 ‘탄핵정국 결정적 장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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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도 주목했을 ‘탄핵정국 결정적 장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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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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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234(찬성):56(반대)’ 압도적인 표결로 가결하면서 시작됐던 탄핵 정국(촛불, 주권을 세우다)이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의 짧지만 강렬한 언어로 막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 선고 즉시 자연인 신분이 됐고 이젠 검찰의 본격 수사를 대비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숨가빴던 92일간의 탄핵 정국에서 국민들의 이목이 쏠린 다섯 장면을 돌아봤다. 헌재의 결정에 작지 않은 영향을 줬을 법한 장면들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월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월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1. 박 대통령의 첫 반격 “완전히 나를 엮은 것”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청와대에서 칩거 중이던 박 대통령은 새해 첫날 깜짝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헌재 첫 변론을 이틀 앞둔 시점이다. 40분간 진행된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참사 당일 행적 ▲최순실과의 관계 ▲중소기업 특혜 ▲삼성합병 봐주기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최씨에 휘둘리지 않고 대통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강변했고, 삼성 봐주기 의혹에는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는 격한 반응까지 내놓았다(기막히다는 朴 "삼성 합병 특혜? 완전히 엮은 것").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5일, 11월 4일과 29일 등 세 차례 대국민 담화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일부 잘못을 인정하고 해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을 겨냥한 탄핵심판과 특검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이날 기자간담회를 기점으로 수세에서 공세로 전략을 명확하게 바꿨다. 직무정지 상태인 박 대통령이 언론과 간담회를 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2. ‘세월호 7시간’을 둘러싼 신경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1월 10일 헌재 3차 변론기일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담은 답변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참사 1,001일 만에 드디어 공개된 ‘세월호 7시간’이다. 앞서 헌재는 12월 22일 첫 변론준비절차에서 탄핵소추 사유를 ▲비선조직 국정농단 ▲재단 강제모금 등 권한남용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7시간’으로 대표되는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대기업 뇌물수수 등 5가지 쟁점으로 정리했다. 특히 이날 이진성 재판관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시간대별로 밝혀달라”고 말하면서 ‘세월호 대응’이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당일 정상적으로 근무하며 상황을 챙겼다”며 “언론 오보와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 탓에 참사 당일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며 외부로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아 오히려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었다(첫보고 10시? 의문 더 키운 ‘세월호 7시간’). 박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이 9시 19분 인지한 사건을 10시가 되어서야 처음 보고받았고, 10시 이전까지의 행적 설명은 아예 하지 않았다. 주요 보고자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내역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비서관들에게 수시로 받았다는 대면보고도 구체적인 시간과 내용은 빠졌다. 헌재는 대통령 답변서에 대해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박근혜(오른쪽)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규재TV' 운영자인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규재TV 제공
박근혜(오른쪽)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규재TV' 운영자인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규재TV 제공

#3. 박근혜ㆍ최순실의 동시 반격

1월 25일 열린 헌재 9차 변론기일에서는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출석해 박 대통령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책임이 있다고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문건을 처음 본 시점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이라며 “그해 7월 박 대통령과 면담에서 차별과 배제의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고 밝혔다. 또 퇴임을 일주일 앞둔 박한철 헌재 소장이 “(이정미 재판관 퇴임으로 7인 체제가 되는) 3월 13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며 신속한 재판 진행 의지를 천명하자 지연 전략을 구사하던 대통령 대리인들이 강력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한편 헌재 밖에서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동시다발적으로 반격에 나섰다(박근혜ㆍ최순실 짜맞춘 듯 동시 반격).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의 인터넷방송 ‘정규재TV’와 기습 인터뷰를 갖고 또다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한마디로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자 가공의 산"이라며 "그동안 진행 과정을 추적해보면 뭔가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며 음모론까지 제기했다(朴, 관련 의혹들 조목조목 반박).

최순실씨가 25일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며 "자백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최순실씨가 25일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로 소환되며 "자백을 강요당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이날 오전 특검에서는 사무실에 들어가던 최순실씨가 돌연 취재진을 향해 “여기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고 외치는 소동이 있었다. 소환에 불응하다 체포영장 발부로 억지로 불려나간 최씨는 “박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며 격렬히 항의했다. 특검 첫 소환 당시 “죽을 죄를 지었다”고 울먹이던 모습에서 180도 돌변한 것이다. 이 같은 최씨의 태도 변화는 특검 수사 신뢰도를 떨어뜨려 국정농단 재판과 헌재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분석됐다.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13차 변론기일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재판을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13차 변론기일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재판을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 이정미 ‘8인 체제’에 도전장… 朴대리인단의 무리수

박한철 헌재 소장이 1월 31일 퇴임하면서 이정미 재판관이 소장 권한대행을 맡아 탄핵심판을 진행하게 됐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박 전 소장의 후임을 지명할 수 있나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재판관 한 명이 빠진 ‘8인 재판관 체제’가 됐다.

이 대행 체제 첫 재판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은 “3월 13일 이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박한철 전 소장의 발언에 대해 재차 불만을 드러내고 “짧은 심리 기간에 선고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재판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증인을 대거 추가 신청하며 재판 지연 전략을 노골화했다. 이 때문에 헌재가 추가 증인 신문 기일을 잡자 일각에서는 “헌재가 공정성 시비를 너무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헌재, 추가 증인 신문 통해 공정성 시비 최소화).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한 지난달 3일 청와대 내 대통령 관저의 모습. 홍인기 기자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한 지난달 3일 청와대 내 대통령 관저의 모습. 홍인기 기자

그 사이 특검도 강경해진 청와대와 대통령을 수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박근혜의 필리버스터’, 진흙탕 싸움 노린다). 특검 수사의 정점으로 꼽히던 청와대 압수수색은 2월 3일 5시간에 걸친 대치 끝에 빈손으로 철수했고, 9일로 예정됐던 대통령 대면조사도 일정 유출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단 김평우(가운데)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우측은 대통령측 서석구 변호사가 재판정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 좌측은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단 김평우(가운데)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우측은 대통령측 서석구 변호사가 재판정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 좌측은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일보 자료사진

#5. 특검의 이재용 구속이 쏘아올린 공

헌재는 대통령 측의 명백한 지연 전략에 소송지휘권을 적극 발동하며 ‘8인 재판관 체제’에서 사건을 결론 짓겠다는 뜻을 점차 확고히 했다(헌재, 朴측 시간지연 전술 줄줄이 퇴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불출석 증인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고영태 기획설’ 검증을 위해 녹음파일을 재판정에서 재생하자는 대리인단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가 최종변론기일을 2월 말로 못 박은 이후 대통령 대리인단의 발언이 눈에 띄게 과격해졌다. ‘변론 속도가 너무 빠르다’, ‘8인 체제는 공정하지 않다’ 등 기존의 절차상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재판관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법정 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朴측, 탄핵 불복 작심한 듯 ‘헌재 농단’). 22일 16차 변론에서 대통령 대리인측 김평우 변호사는 강일원 주심을 향해 "국회의 수석 대리인이냐"고 쏘아붙인 데 이어 "탄핵이 인용된다면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는 도를 넘는 발언을 무더기로 쏟아내 법조계에서도 “징계할 사안”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구속 후 첫 소환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구속 후 첫 소환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헌재 밖에서는 2월 말 수사기간 종료를 앞둔 특검의 시계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특검은 17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재수’ 끝에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특검, 삼성 경영권 승계 전반 파고들어 부정청탁 캐냈다). 특검은 최종수사결과 발표에서 “박 대통령의 300억원 뇌물수수 혐의를 확인했다”며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혔다(특검 “박대통령 뇌물죄 입건” 90일 대장정 마무리). 물론 특검 수사결과가 탄핵심판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견해가 중론이다. ‘뇌물죄’ 혐의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대기업으로부터의 뇌물수수’와 얽혀있기는 하지만 그외 탄핵소추 사유가 여럿이고 인용ㆍ기각 여부 위반의 ‘중대성’에 달려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심증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회 소추위원장 자격으로 특검 수사결과를 헌재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바른정당 권성동 의원은 “특검 수사결과가 증거는 아니지만 (탄핵심판에)간접적인 영향이 있으리라 본다”고 밝혔다.

송은미 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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