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었던 ‘3김(金) 시대’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손잡고 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쥔 JP는 산업화 세력의 상징으로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과시했다.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김영삼(YS)ㆍ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YSㆍDJ와 번갈아 손잡는 등 애증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이던 JP는 35세이던 1961년 5ㆍ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일찌감치 정치에 입문했다. 초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해 권위주의 개발독재를 뒷받침한다. 반면 YSㆍDJ는 1967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첫 대결을 펼치면서 야권의 지도자로 떠오른다. 3김 시대의 태동이다.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10ㆍ26사태로 서거하면서 3김이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두환 신군부가 12ㆍ12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으면서 3김 모두 긴 정치적 동면에 들어가야 했다.
3김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관철되자 한국정치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시대정신은 영ㆍ호남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YS와 DJ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해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지 못한다. 그 사이 JP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대선에 도전해 182만여표(8.1%)를 득표하며 독자세력화의 토대를 다진다.
1990년대는 3김 시대의 절정기다. 양김씨 보다 단수가 하나 높은 ‘정치 10단’으로 불렸던 JP는 결정적 순간마다 손을 바꿔 잡으며 YSㆍDJ가 차례로 대권을 쥐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JP는 먼저 1990년 YS와 손잡고 여당인 민정당과의 3당 합당을 감행한다. 민주자유당의 탄생으로 여소야대의 의회 지형이 일순간 여대야소로 바뀌었다. JP는 1992년 대선에서 YS를 지원하며 DJ를 꺾고 대선에서 승리한다.
JP는 YS가 내각제 개헌을 약속을 지키지 않자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한 뒤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며 차기 대선을 겨냥한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1997년 대선에서 DJ와 손잡고 ‘DJP 연합’을 형성에 DJ의 대통령 당선을 돕는다.
JP는 DJ정부 초대 총리로서 정권의 한 축을 맡기도 했지만, 내각제 개헌이 물 건너 가자 DJP 공조 파기를 선언한다. 이후에도 대권 도전의 꿈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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