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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 커피 향에 숨은 빈민국 노동자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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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 커피 향에 숨은 빈민국 노동자의 한숨

입력
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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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 커피, 그리고 면(綿)은 세계인의 기호식품이자, 필수품으로 꼽힌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매년 7월부터 본격적인 ‘바비큐 시즌’에 돌입하는데, 가을까지 각종 야외 바비큐를 즐긴다. 요즘 우리나라는 ‘한집 건너 한집이 커피전문점’이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습관처럼, 혹은 당연하게 먹고 마시고 입는 이들 상품에는 저소득층의 강제 노동이나 불공정 거래, 어린이 노동력 착취라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숯 채취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숯을 내보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숯 채취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숯을 내보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나미비아 바비큐 숯, 열악한 채취 현장

빨갛게 달궈진 그릴 위에서 잘 그을린 쇠고기 립, 연어 냄새는 집 정원과 발코니, 그리고 공원을 가득 채우곤 한다. ‘바비큐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영국의 경우, 매년 전국 곳곳에서 1억2,000여 차례나 바비큐 파티가 열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그릴 안에서 맛있는 연기를 내며 타오르는 이 많은 숯들이 아프리카의 남서부 빈국 나미비아(국내총생산ㆍGDP 120위)의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생산된 것임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서 북쪽으로 약 250㎞ 가량 떨어진 아웃조(Outjo) 지역. 나미비아 노동 현장을 조사중인 영국 NGO단체 페른(Fern)에 따르면, 이곳에는 숯을 태우는데 필요한 나뭇가지와 덤불, 그리고 쇠 드럼통들이 곳곳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또 광범위한 면적에 걸쳐 불법 벌목이 자행되고 있다.

우선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는 작고 열악한 임시 건물들이 눈에 띈다. 검은 플라스틱 패널과 나무조각들로 얼기설기 만들었는데, 숯 채취 노동자들의 거처다. 노동자들은 이 임시 주거지들에서 제대로 된 화장실이나 상수도 시설도 없이, 보수로 받는 약간의 돈과 음식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작업 환경 역시 열악하다. 숲에서 커다란 나무를 잘라 작업장으로 운반한 뒤 다시 수 차례에 걸쳐 잘게 자른다. 이 나무를 임시 숯가마에서 며칠 동안 구워 내는데,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작업복이나 보호복도 입지 않은 채 불을 다룬다. 한 노동자는 “노동 강도가 벌을 받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고되다”며 “하지만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라 그만 둘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은 매년 6만톤 가량의 숯을 사용하며, 이 중 80%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나미비아는 주요 수입국 중 하나다. 영국산 숯은 톤당 약 1,400파운드(약 246만원)인데 반해 나미비아산 숯은 수입 비용 및 관세를 감안하더라도 톤당 76파운드(약 13만4,000원)에 불과하다. 나미비아 숯 생산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페른 관계자는 “바비큐를 즐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맛있는 바비큐를 만들어 내는 아프리카 숯 채취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임금, 환경 상태가 얼마나 슬프고 열악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미비아 정부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2003년부터 숯 산업 전반에 걸쳐 현황 파악 및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알패 무휴아 나미비아 사회복지노동부 차관은 “숯 채취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조차 인식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산림관리협회(FSC) 등 공인 기관의 인증을 거친 숯만 유통시킴으로써 상황을 대폭 개선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권운동가 사스키아 오진가는 “유럽에서 유통되는 모든 숯에 공인 인증 작업을 거치고, 인증 기관이 공식적으로 숯 생산 과정을 관리ㆍ감독 하도록 한다면, 나미비아 노동자 착취 문제는 물론 환경 문제까지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며 “소매업자들과 소비자들 역시 공인 인증 숯만 사용하는 성숙한 유통ㆍ소비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의 한 목화밭에서 한 노동자가 밭을 일구고 있다. 게티이미지
우즈베키스탄의 한 목화밭에서 한 노동자가 밭을 일구고 있다. 게티이미지

우즈벡ㆍ투르크멘 목화, 강제 노동의 현장

“저는 응급 구조 요원입니다. 환자들을 도와야 하죠. 하지만 목화를 수확하지 않으면 해고될 거라고 병원장이 말하더군요.”

우즈베키스탄의 광활한 목화밭. 국가의 중요 생산품을 수확하는 일꾼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중에는 의사, 간호사, 회계사, 교사, 그리고 지방관리들까지 자신들의 본업을 미룬 채 목화밭에 나와 있다. 한창 일손이 바쁠 때면 상수도 등 기본 위생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좁은 숙소에서 잠을 자야 한다. 정부가 부과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칫 본업을 잃을 수도 있다. 콤바인 수확기가 있긴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만 사용될 뿐, 목화 수확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소비에트연합이 무너진 지 20년이 넘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아직도 목화 수확기 때 상당수의 국민이 동원되는 강제 노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CNN과 BBC 등이 최근 보도했다.

사실, 두 나라의 목화밭 강제 노동에 대한 비난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동 노동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국제 패션업계가 일제히 우즈벡ㆍ투르크멘 산 목화 구매를 거부하자 우즈벡은 만 16세 이하 청소년 고용을 금지했다. 실제로 2012년 이후 강제 노동에 동원되는 청소년 수는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강제 노동 시스템 자체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동 노동 금지’라는 국제 사회의 요구에는 부응하면서, 아이들의 빈 자리를 더 많은 성인들로 채우는 편법을 사용한다고 비정부기구(NGO)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목화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은 2,000원 미만으로 알려졌으며,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은 ‘비 애국자’로 낙인 찍힌다. 대학 강사라는 한 노동자는 “정부에서 발령받은 젊은 감독관이 자기 엄마뻘 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겁을 주곤 한다”며 “감독관의 괴롭힘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농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농민에게 임대해 줌으로써 목화 생산ㆍ수출에 독점권을 갖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이 생산자가 아닌 일부 부패한 엘리트 집단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두 나라 정부는 목화밭 강제 노동 사실을 세계에 고발하는 활동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목화밭 강제 노동 종식을 위한 인권단체 연합 ‘면화 캠페인(the Cotton Campaign)’에 따르면 우즈벡의 유명 인권활동가인 엘레나 울레바는 한 달에 한번 꼴로 경찰의 끊임 없는 조사와 간섭에 시달리고 있다. 울레바는 우즈벡 강제 노동 현황을 문서로 남기려고 노력 중인 사회 운동가다. 면화 캠페인 관계자는 “전 세계 목화 소비자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면화가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 알아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커피를 쥔 손
커피를 쥔 손

베트남 커피 농장의 소작농들

전 세계 50개국에서 약 2,000만명의 농부와 노동자들이 커피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부분의 소작농은 중간거래상이나 수출업자에게 커피를 파는데, 이들은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소작농들의 이익을 착취하고 있다.

한 해 생산량 80만톤 이상으로 세계 커피 수출 2위 국가인 베트남의 경우, 최대 커피수입국인 미국과 우리나라(11위) 등으로 커피를 판매한다. 한 잔에 4,000~5,000원을 훌쩍 넘는 커피지만, 현지 커피 농장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별로 없다. 현지 농장은 커피 원두 1kg을 1만1,000동(700원)에 판매하며, 이 원두로 커피 150잔 정도를 만들 수 있다. 반면, 노동자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들은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고작 하루 1~2달러 정도가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원두 가격이 싼 것은 수입업자들이 농장 한해 생산물을 몽땅 사들이는(입도 선매) 등 ‘불공정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지 농장들은 값싼 어린이 노동력을 착취해 가격을 맞추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의 한 언론은 “갈수록 세계 커피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생산지 주민들의 가난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에 최근에는 ‘공정 거래 커피’ 바람이 불고 있다. 중간 상인 개입 없이 농민 조합과 구매자 사이의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 수익은 높이고 소비자들의 부담은 줄이겠다는 것이다. 또 18세 이하 아이들은 칼을 사용하거나 농약을 뿌리지 않게 해 건강을 보호하도록 한다. 또 15세 어린이는 학교 다녀온 다음에만 일할 수 있다. 특히, 이익 일부는 학교나 병원 등을 세우는데 사용된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전영현 인턴기자(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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