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떨어진 前 실세에 모른 척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줄을 대려던 검사들이 적극적으로 거리를 두며 돌변하고 있다.
그 동안 검찰 내에선 우 전 수석의 인사 전횡 등에 대해 불만이 컸지만, 이를 대놓고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 전 수석에게 알려져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반(反)우병우 라인’이라고 밝힌 한 검사는 “우 전 수석이 변호사 시절 때는 그를 욕하던 검사들이 그가 민정수석이 되자 두둔하는 것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일부 검사들은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해온 우 전 수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도를 넘은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검사는 “우 전 수석에게 좋은 보직으로 보내달라고 읍소한 검사도 있었고, 우 전 수석이 관심을 갖는 수사의 주요내용을 보고라인을 거치지 않고 알아서 보고하는 검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에서 물러나자 검사들의 태도도 확 바뀌었다. 우 전 수석이 청와대를 떠날 무렵 친분이 있는 검사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만나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서울 지검의 한 검찰 간부는 “우 전 수석이 현재 수사대상인 만큼 통화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모른 척하고 싶은 게 솔직한 속내일 것”이라고 전했다. ‘끈 떨어진’ 우 전 수석과 연락하며 지낸다는 말이 돌아서 좋을 게 없다는 의미다.
4일 김수남 검찰총장의 지시로 전국에서 10명의 검사를 뽑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에 파견하는 과정에서 경쟁률이 높았던 사실도 우 전 수석의 퇴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특별수사본부에 예상보다 많은 검사들이 지원해 검찰 수뇌부가 누구를 파견할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검찰 조직의 명운이 걸린 수사라 사명감을 갖고 지원한 검사도 있었지만, ‘우병우 라인’ 딱지를 떼기 위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란 게 검찰 내부의 분석이다.
우 전 수석과 그의 처가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특별감찰관실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은 지 2개월이 지나서야, 그가 청와대를 떠나자마자 소환조사 방침을 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우 전 수석이 현직일 때는 ‘조사 필요성이 없다’거나 기껏해야 ‘서면조사 정도면 될 것’이라던 검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우 전 수석을 대하는 검사들의 모습이 검찰의 권력지향적인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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