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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명예퇴직과 기업 경쟁력

입력
2014.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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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행ㆍ증권ㆍ보험 등 금융산업의 구조조정과 다운사이징이 심각하다. 은행의 경우 주로 외국계은행을 중심으로 점포 축소와 인력 감축이 진행되고 있고, 증권업과 보험업은 영업 부진과 미래 손실 가능성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SC은행과 씨티은행은 각각 영업지점 25%와 30%를 축소했다. 뭉칫돈을 손에 들고 근로자들은 십수년간 일하던 직장을 떠났다. 보험업과 증권업종에서도 수천명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떠났다.

작금 벌어지는 구조조정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명분과 이유로 따지자면 시장위기에 직면한 기업의 입장에서 구조조정이 전략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특히 1997년의 경제위기와 2008년의 금융시장 파동이 트라우마로 살아있는 상황에서 예방적 여력이 있을 때 서둘러 체중을 줄이고 유연성을 키워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의 대부분은 집단적 정리해고 대신 명예퇴직의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정리해고 비용보다는 자발적 퇴직의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퇴직을 수용한 근로자들 가운데는 적극적으로 선택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후적 불이익이 초래할 비용을 고려해 반강제적으로 수용한 경우가 많다. 명예퇴직을 거부한 소위 조정대상자들에게는 훨씬 가혹한 인사조치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의 전보, 무보직 배치, 전문성과 무관한 직무 할당 등 ‘특별’ 인사조치가 수반된다.

경기 변동의 시기에는 어떤 기업이라도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고용 보호를 위해 법이 요구한 절차를 모두 이행하고도 인력 유지가 어려운 경우 정리해고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반강제적인 희망퇴직, 원거리 또는 오지 전보 등의 방법은 부적절한 수단이며, 이는 기업조직의 역량과 가치를 잠식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핵심인재의 이탈 가능성이다. 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과 비정상적 인사조치들은 내부인력의 심리적 불안을 야기하게 되며 그 경우 자원의 이탈 가능성이 높아진다. 동료가 조직에서 숙청되는 경험을 한 근로자들은 불안을 외부화하게 되며 가장 유효한 수단은 새 일자리를 탐색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안 직장을 탐색하는 근로자들이 대부분 현재 기업 내에서도 경쟁력이 높은 핵심 인재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자원 역량이 큰 인력일수록 시장에서의 구직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의 성과를 인적자원 경쟁력에 의존하는 업종의 경우 핵심인재 유출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잠식하는 치명적 요소다.

다음으로는 잔류인력의 불안과 조직 몰입도의 저하 문제다. 필자는 2005년 일본 경제의 버블 시기가 마감될 즈음 마쯔시다덴키(松下電氣)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마쯔시다는 창업자 마쯔시다 고노스케의 이름을 딴 일본의 대표기업으로 파나소닉과 나쇼날을 대표 브랜드로 가지고 있는 굴지의 글로벌 전자회사다. 많은 학자들이 2차대전 후 일본기업의 급속 성장 원인을 삼종신기(三種神器:연공제ㆍ기업별노조ㆍ종신고용)로 요약할 때 대표적 사례가 마쯔시다였다. 마쯔시다는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경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가치로 여기는 회사였다. 그러던 마쯔시다가 위기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2004년 2만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을 퇴출시켰다. 방법은 희망퇴직으로 자발적 선택에 의한 구조조정이었다. 당시 만난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으나 그들이 겪은 충격과 불안은 말로써 감춰지지 않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했던 근로자들에게 기업은 더 이상 담보가 되지 못했다. 그 후 마쯔시다 근로자들은 조직보다는 개인, 미래보다는 현재의 효용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변했다. 그 결과의 많은 양상을 이해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지만 부정적 효과는 막대했고, 기업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됐다.

고용지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낮아지면 근로자들은 자신을 위한 이익극대화의 기회주의적 선택을 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섣부른 구조조정과 인력감축, 내부인력의 궁핍화 전략은 기업의 경쟁기반을 잠식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중장기적 안목의 고용전략이 필요한 때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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