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상임위장 주고받기식 흥정
22년째 법정시한 한 번도 못 지켜
국회법에 ‘의장단 선출’ 명시해야
英 무기명 투표로 국회의장 뽑고
美하원도 첫 회의서 원 구성 완료
7일 늑장 원 구성으로 입법부 수장이 없는 ‘유령국회’가 22년째 되풀이되면서 원 구성이 '자동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1994년 국회법이 개정돼 원 구성 법정시한이 '임기개시 후 7일 이내'로 규정됐지만 국회가 한번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서 '원 구성'을 여야 협상의 대상으로 둘 것이냐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어서다. 여야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지켜야 할' 상임위와 '뺏어와야 할' 상임위를 매 국회마다 흥정하는 주고받기 식 협상도 정치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여야는 임기를 시작한 지난달 31일 '일하는 국회' '생산적 국회'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날까지 새누리당ㆍ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 3당 원내지도부는 ▦국회의장 선출 ▦상임위원장 배분 ▦상임위원 배정 완료라는 원 구성 3대 요소 중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3당은 이날 아무런 협상도 진행하지 못했다. 집권여당이지만 원내2당인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이 '여당 몫'이라고, 더민주는 '다수당 몫'이라며 서로 유리하게 ‘관행’을 해석해 맞선 상태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의 원 구성이 협상 대상이 아니라 시스템화돼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하원은 개원 후 처음 소집되는 회의에서 의장ㆍ상임위원장을 선출하고 상임위원 배정도 마쳐 원 구성을 완료한다. 의회선거 직후부터 공화당ㆍ민주당 양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의장 후보자를 선출하고 상임위원장과 위원 배정을 마치기 때문에 개원 직후 원 구성을 즉각 마무리할 수 있다. 다수당의 의장 후보자가 선출되고 다수당이 상임위원장 직을 독점하는 관행이 확립돼 이를 둘러싼 소모적 갈등이 원천배제된다. 상원의 경우 의장은 부통령이 맡지만 원 구성은 하원과 마찬가지로 다수당 위주로 구성된다.
영국 하원의장은 개원 첫날 의원들의 '무기명 비밀투표' 직접선거로 최다득표자를 의장으로 선출하고, 개원 후 처음 소집되는 회의에서 위원회배정위원회가 상임위원장ㆍ위원 배정명단 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한다. 두 나라 모두 원 구성에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
우리 국회도 원 구성에 이처럼 '자동성의 원칙'을 보장하면 수십 년 반복되는 국회 공전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먼저 의석 수든 여당 위주든 국회의장ㆍ상임위원장 선출ㆍ배정을 명시하거나, 큰 틀의 윤곽을 잡아놔야 한다고 지적했다(윤종빈 명지대 교수). 지금처럼 원 구성 협상이 파행되면 투표로 의장단을 먼저 선출하고, 교섭단체 의석 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토록 국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했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정당지도부, 정당 내 지역대표, 선수(選數)별 대표, 직능대표, 연구모임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상임위배정위원회를 설치해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상임위 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손병권 중앙대 교수).
당장 급한 국회의장 공석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적 손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크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정치학 박사)은 "원 구성 협상이 미뤄질 경우 원내 다수당 최다선 의원 중 최고령 의원이 국회의장이 선출될 때까지 직무를 대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결국 국회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의원 한 명 한 명이 준법헌장(가칭)에 선서하고 그 첫 과제를 원 구성 협상으로 한다면 고질적인 '늑장 개원'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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