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 개막하는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는 ‘삼총사’의 번외 이야기 격이다. 세월이 흘러 총사직에서 은퇴한 삼총사와 총사 대장이 된 달타냥이 프랑스 왕 루이 14세를 둘러싼 비밀을 밝힌다는 줄거리다. 허영심 많고 독선적인 루이와 그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이유로 철 가면을 쓴 채 감옥에 갇힌 필립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루이와 필립을 1인2역으로 연기해야 하기에 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루이와 필립 1인2역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맡고 있다. 산들(B1A4), 이창섭(비투비), 장동우(인피니트), 켄(빅스)이 무대에 선다. 대극장 작품에서 뮤지컬 배우와 아이돌 출신 배우가 주인공에 동시에 캐스팅 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모두 아이돌을 세운 건 이례적이다.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올 수 밖에 없다.
11월 공연 예정인 ‘엘리자벳’에서는 황후 엘리자벳 역할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소현, 신영숙과 함께 아이돌 그룹 멤버가 호흡을 맞춘다. 황후를 유혹하는 토드 역할에 박형식(제국의 아이들), 레오(빅스)가 캐스팅 됐다. 군 제대를 앞둔 김준수(JYJ)도 출연을 검토 중이다.
1세대 아이돌이었던 바다(S.E.S)와 옥주현(핑클)이 뮤지컬계에 발을 디딘 지 15년, 그 사이 뮤지컬 작품에서는 아이돌 멤버가 없는 경우가 더 드문 상황이 됐다. 아이돌이라는 선입견을 이겨내고 인정 받는 ‘아이돌 뮤지컬 배우’들도 늘었다. 뮤지컬 제작사 입장에서는 대중성을 갖춘 데다 연습생 시절부터 다양한 트레이닝을 받은 아이돌을 캐스팅하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아이돌은 연예 활동의 영역을 더 넓히고, 그룹 활동 이후를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 출연에 적극적이다. 뮤지컬 무대에 아이돌의 출연이 잦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10년 전보다 많아지고 다양해진 아이돌
아이돌 멤버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뮤지컬 무대에 진출했다. 소녀시대, 빅뱅, 슈퍼주니어 등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 멤버들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돌 없는 뮤지컬이 없을 정도다. 거의 모든 작품의 주조연에 아이돌 멤버 한 두명은 이름을 올린다. 아이돌 출연 자체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10년 전과 가장 큰 차이점은 ‘겸업’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공연평론가인 지혜원 경희대 교수는 “예전에는 가수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뒤 뮤지컬로 넘어 왔다면, 요즘은 아이돌 그룹 내에서 뮤지컬을 하는 멤버가 생겼다”며 “연기를 잘하면 연기로 영역을 넓히고, 노래를 잘하면 뮤지컬을 하는 식인데 아이돌이 노래, 춤, 연기를 모두 트레이닝 받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2010년 이전 뮤지컬에 뛰어든 아이돌은 아이돌로서 절정기가 지나고 팀이 해체되면서 제2의 길을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바다, 옥주현, 김준수, 손호영, 오종혁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은 수호(엑소), 루나(에프엑스)처럼 아이돌과 뮤지컬 배우를 병행한다. 서은광(비투비) 성규(인피니트) 양요섭(하이라이트) 규현(슈퍼주니어) 조권(2AM) 등도 군 입대 전까지 뮤지컬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는 “작품이 다양해지고 관객층도 다양해지면서 이전에 아이돌 배우에 대해 부정적으로 봤던 시선들이 많이 사라졌다”며 “무엇보다 성공한 사례, 잘하는 친구들이 나타난 것이 주효했다”고 봤다. 조 평론가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활동할 수 있는 발판으로 뮤지컬이 떠오른 지는 꽤 됐다”며 “대극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는 뮤지컬 업계와 아이돌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뮤지컬에 뛰어든 아이돌
뮤지컬계에 득 될까 독 될까
뮤지컬 제작사에서는 신인 뮤지컬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보다 아이돌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적다고 본다. 다양한 트레이닝을 거친 데다 무대 경험이 많고, 실력에 있어서도 신인 뮤지컬배우와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아이돌은 티켓 판매 예측이 더 용이하다. ‘웃는 남자’에 수호를 캐스팅한 EMK뮤지컬컴퍼니의 관계자는 “노래가 바탕이 되는 뮤지컬에서 노래 실력은 물론 콘서트와 무대 위 퍼포먼스로 단련된 아이돌 배우들은 대본과 연기 습득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연습 기간이 매우 길지 않은 뮤지컬계에서 노래 실력을 이미 갖추고 있으면서 대본 이해도가 빠른 것은 가수 출신 배우들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스타 뮤지컬 배우만큼의 티켓 파워를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 대중성과 고정 팬덤이 있고, 이 때문에 새로운 관객이 뮤지컬에 유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뮤지컬 업계 한 관계자는 “아이돌이 출연한 회차가 전석 매진된다는 정도의 티켓 파워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 작품이 홍보되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특히 초연 작품은 뮤지컬계 외부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고 해외 팬덤에게도 홍보가 된다는 점이 주효하다”고 말했다. 3,000여석의 대극장을 15분 만에 매진시킨 김준수의 사례는 아이돌 출신 중에서도 이례적이다.
중요한 건 이들을 적절한 작품에 잘 맞는 역할에 캐스팅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혜원 평론가는 “아이돌이라고 캐스팅에서 배제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보통 20대인 아이돌의 나이 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적합한 캐릭터에 캐스팅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0대 미만이 소화할 만한 배역이 많지 않은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다른 배우와의 이질감이 크게 느껴져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4명의 주인공을 모두 아이돌 배우로 캐스팅한 ‘아이언 마스크’의 관계자는 “뮤지컬 ‘아이언 마스크’가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흥행작인 동명의 영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청량한 이미지에 맞는 아이돌 배우가 잘 소화할 것이라 봤다”고 했다.
조용신 평론가는 “아이돌 배우 개인의 성공사례는 있지만, 작품 전체를 봤을 때는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며 “멀티 캐스팅이 공연 완성도와 작품 해석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캐릭터에 배우가 많으면 연습 자체가 어려운데 아이돌의 바쁜 스케줄로 이 점이 더욱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평론가가 인정한 아이돌은?
대중적 인지도에 힘입어 뮤지컬 무대에 입성했더라도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성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김준수, 옥주현은 실력이나 티켓 파워 측면에서 아이돌의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평가된다. 김준수의 제대 후 뮤지컬 복귀작이 벌써부터 주목 받는 이유다. 옥주현은 티켓예매사이트 인터파크가 티켓 판매량과 관객 투표를 집계해 매년 발표하는 골든티켓어워즈에서 여자배우상을 최다(5번) 수상했다. 이들을 이을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지혜원ㆍ조용신ㆍ박병성 뮤지컬평론가와 뮤지컬 관계자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아이돌을 꼽았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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