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작품 각색한 작품 잇따라
소수 배우가 간소한 무대 위에 오른다. 뮤지컬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인 앙상블의 군무도 없고, 오로지 대본과 음악에만 집중한다. 일명 ‘낭독뮤지컬’. 뮤지컬의 본질에 집중하면서 관객과의 새로운 접점을 만들려는 이 뮤지컬 형식이 국내 공연시장에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을 조짐이다. 대형 뮤지컬에 치중돼 ‘가격 거품’ 논란이 일고 있는 국내 공연시장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창작뮤지컬을 주로 제작해 온 뮤지컬제작사 HJ컬쳐는 낭독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와 ‘파리넬리’ ‘살리에르’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에서 다음달 16일까지 잇달아 선보인다. ‘마리아 마리아’ 등 세 작품은 HJ컬처가 이미 대극장에서 선보였던 뮤지컬이다. 원래 공연을 낭독이라는 형태에 맞게 각색을 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다. 낭독뮤지컬이라고 배우들이 기존 대사를 줄줄 낭독하는 건 아니다.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낭독을 극 중 소재로 사용했다”며 “모든 걸 갖춘 공연도 좋지만 조금은 덜어내도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과 배우의 연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한 대가 음악을 책임진다. 낭독이라는 방식에 걸맞게 편지와 책, 일기장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신작 ‘어린왕자’는 작가인 생텍쥐베리와 어린왕자가 극중 역할로 등장해 소설을 써내려 가는 과정을 낭독뮤지컬이라는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기존 작품을 봤던 관객은 새로운 형식을 신선하게 느낀다. 대극장 뮤지컬의 가격이 부담이었던 이들도 작은 규모에서 뮤지컬의 매력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연평론가인 지혜원 경희대 교수는 “뮤지컬 마니아 관객들은 기존 작품을 소극장에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며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극장 버전을 축소하고, 이미 창작해놨던 작품을 변주하기 때문에 제작비 관점에서도 효율적인 시도”라고 평했다.
무대연출을 최소화하고 배우들이 텍스트를 직접 읽는 형태의 낭독극은 연극 무대에는 예전부터 존재했다. 서울문화재단의 ‘뉴스테이지’, 두산아트센터의 ‘DAC 아티스트’ 등 신진 창작진을 지원하는 사업마다 희곡 개발 단계에서 낭독공연을 거친다. 이수현 정동극장 공연기획팀장은 “낭독극은 배우들의 목소리로 희곡을 직접 읽어보며 공연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보는 의미로 활용됐다”며 ”연출가들이 텍스트에서 또 다른 무대적 상상력을 찾으면서 그 자체적으로도 장르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본 공연을 올리기 위한 전초 단계로서의 낭독극과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 낭독극이 혼재한다는 의미다. 극단 창작집단LAS는 낭독극에 영상, 조명, 라이브 연주를 활용한 ‘입체낭독극’을 지난 6월 선보였다. 영화 ‘만추’와 ‘더 테이블’을 낭독극으로 변주했고, 소설과 희곡도 무대에 올렸다.
한승원 대표는 “학교 로비도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해외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우리도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히면 낭독형태의 공연들이 경쟁력을 더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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