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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어린이처럼] 하니와 코코

입력
2018.01.11 15: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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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하니’와 옆집의 공 여사는 어느 날 아침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나 목적지도 없는 길을 떠난다. 둘은 먼발치에서 바라본 적이 있을 뿐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은 사이다. 밤새 자기 집 정원을 헤매는 소녀로, 튤립 모양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중년 여성으로 알 뿐이었다. 환상과 현실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여행은 계속된다.

숲에서 야영하던 밤, 둘은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무섭다는 하니는 가출하던 참에 공 여사를 만난 것이었다. 학교에서 하니는 거구로 ‘하마’라 놀림 받으며 잔인하게 따돌림을 당했다. 집에서도 하니를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는 이는 없었다. 아버지의 부름은 곧 구타의 시작이었다. 끊임없이 자살 기도하는 엄마가 구해줄 수도 없었다. 집과 학교에서 하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집과 학교를 떠나는 행동만이 유일하게 가능했다.

이튿날 밤 하니와 공 여사는 소년 ‘기린’을 만난다. 소년의 가족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분홍 돌고래 플루토를 잡아먹었고 형들은 기린을 ‘호모 새끼’라 놀린다. 기린이 때로 눈물 흘리며 두려워한 일 역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형들에게서 플루토를 지켜내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할 거라는 폭력적인 현실.

공 여사 또한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으니 여행의 동반자 세 명은 모두 살기 위해 집 밖으로 뛰쳐나온 이들이다. 안타깝게도 이 여행은 환상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다. 희망찬 뉴스만으로 모자랄 새해부터 어린이를 학대하고 암매장 한 뒤 살아있는 척 연기해 온 어른들 이야기가 전해졌다. 아동폭력의 희생자인 어린이들은 아직 제 발로 집을 나올 능력조차 없는 존재였다. 죽을 만큼 다쳐야, 죽어야, 죽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야 호명되는 이름이었다.

하니가 집을 나오기 전 하니의 숨구멍은 상상의 존재 ‘코코’였다. 미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폭력과 방임에서 하니는 코코를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 숨구멍이 필요한 어린이에게 어린이문학은 때로 코코가 되어줄 지 모른다. 그 희망이 어린이청소년문학의 중요한 존재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이를 향한 모든 종류의 폭력이 지금이라도 당장 끝나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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