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의 저주.’
지난 5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선 이런 자막이 흘러나왔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응칠)에서 괄괄한 여고생 성시원으로 ‘응답하라’ 시리즈 부흥의 서막을 연 정은지(23)와, ‘응답하라 1994’(응사)와 ‘응답하라 1988’(응팔)에 연이어 출연했던 배우 김성균(36)이 이날의 초대손님이었다.
MC 전현무가 “‘응답하라’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이 차기작은 (성적이)저조하다는 말이 있다”고 하자 정은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김성균에게 “무섭죠?”라고 되물었다. 이날 새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홍보를 위해 배우 이제훈과 함께 출연한 김성균은 “‘응답의 저주’가 사실이라 해도 영화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제훈이라 (영화가) 잘 될 것 같다”며 서둘러 대답을 마쳤다.
‘응답하라의 저주’란 말에 안절부절 못하며 말까지 더듬는 김성균의 모습에 출연자들은 폭소를 터뜨렸지만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 출연자들 중 이 방송을 보고 웃을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응답하라의 저주’는 방송 내내 신드롬을 몰고 다니며 화제의 중심에 있던 ‘응답하라’ 출신 젊은 배우들이 차기 작품에서는 전작 만한 눈길을 끌지 못하고 기를 못 펴는 현상을 일컫는다.
방송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인 ‘응답하라의 저주’가 도무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장 최근 방송된 ‘응팔’에서 가난하지만 마음 따뜻한 여고생 성덕선을 연기해 사랑을 받았던 혜리(22)도 이 저주의 매듭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 보이나 역부족이다. 혜리가 ‘응팔’ 종방 이후 3개월 만에 출연한 SBS 수목드라마 ‘딴따라’는 현재 한 자리 수 시청률(8%대)을 전전하고 있다.
‘딴따라’는 시청률 40%에 육박했던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종방과 방송 시기가 맞물린 만큼 ‘태후’의 시청자들을 흡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딴따라’는 별다른 화제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며 경쟁작인 MBC ‘굿바이 미스터 블랙’(9.0%)에도 밀리고 있다.
새침하고 도도한 이미지가 강했던 ‘응사’의 히로인 고아라(26)도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마산 출신 여대생 성나정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응사’ 종방 5개월 뒤 출연한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2014)를 시작으로 영화 ‘조선마술사’ 등에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흥행에서는 쓴 맛을 봤다. 같은 드라마에서 고아라와 삼각관계를 이루며 여심을 흔들었던 정우(35)와 유연석(32)도 현재까지 ‘응사’만한 히트작이 없다.
‘응답하라의 저주’는 스타덤과 연기력을 혼동하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드라마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한 ‘응답하라’ 시리즈와 달리 이들이 차기작으로 선택하는 정극의 경우 연기자 개인의 역량에 승패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응답하라’ 시리즈는 배우의 연기력 보다는 작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캐릭터의 힘이 더 큰 작품”이라며 “연기란 결국 경험의 축적인데 ‘응답하라’시리즈 출연만을 앞세운 젊은 배우들이 덜컥 정극의 주연을 맡아 부족한 역량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중의 피로도와 높은 기대치가 맞물린 탓도 크다. 출연 배우들은 수개월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며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광고에 얼굴을 내비친다. 하지만 단숨에 얻은 인기는 휘발성도 강하다. ‘응팔’에서 혜리 못지 않은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박보검과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가 출연한 tvN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도 ‘쌍문동 4인방’이란 캐릭터가 이미 소비될 대로 소비된 탓이 크다. 정덕현 평론가는 “‘응답하라’를 통해 대중의 기대치는 한층 높아진 상황”이라며 “차기작에 대한 의욕만으로 이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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