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들이 많았다. 세월호 사건, GOP 총기난사 사건 등의 소식을 접하면 내가 경험한 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일상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사건의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극한의 사건을 경험한 후에 남게 되는 심각한 정신적ㆍ심리적 상처를 트라우마(trauma)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 후에는 슬픔,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악몽에 시달리며 극도의 불안과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Post Traumatic Stress)라고 하는데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는 보통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호전되고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3분의 1 정도의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지속돼 고통 받는다.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ㆍPTSD)라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주요 증상은 트라우마를 남긴 고통스러운 사건을 반복적으로 회상하면서,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가 계속되다 점점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그 뒤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이런 일을 겪나 봐요”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세상은, 신은 너무 불공평해요”라고 말하며 죄책감과 고통을 겪게 된다. 증상이 더 심각해지면 기억을 상실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혼돈과 방황을 하는 해리 상태가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겪는 증상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사건 당시의 죽음의 공포와 불안이 뇌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처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어떤 방법으로 줄일 수 있을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정상적인 삶으로 회복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족과 사회의 지지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중 일부는 사회적 관계를 차단하고 멀리하려는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과 감정이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해할 수 있다는 위로를 전달해 줘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해 줘야 한다. 또한 그들은 반복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경험, 아픔을 이야기하는데 이에 대해 이제 그만 벗어나라고 다그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나 유가족들에게는 자신의 상실과 아픔을 애도할 시간 즉, 작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작별 인사를 해야 슬픔과 비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겪은 외상적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생존자나 유가족들은 ‘나 때문에’ 혹은 ‘내가 도와줄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럴 경우에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도움의 한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다 잘 될 거에요” “그래도 당신 곁에 다른 가족이 남아 있잖아요”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겪는 슬픔, 비통함, 고통에 대해 관대하게 바라보고,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이전과 같이 식사하고, 잠을 자며, 직장과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을 천천히 확인하면서 조금씩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이들이 일상의 삶으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것은 어설픈 동정이나 위로가 아니다.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세상과의 소통임을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곽윤정 세종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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