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 대역전 경주대회(이하 한반도 역전마라톤)에는 ‘기록의 사나이’가 있다. 릴레이 마라톤 기록 체크‘계시’를 담당하는 이성직(55) 한양대 육상부 감독이다. 가장 먼저 결승 지점에 도착해 부지런히 초시계를 눌러야 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이 감독은 1988년 제34회 경부역전마라톤에서 고등부 선수로 뛰기 시작해 거의 30여 년을 한반도 역전마라톤과 함께 했다. 그는 “한반도 역전마라톤이 열릴 때는 항상 춥고 진눈깨비가 내리곤 했다. 매년 고생스런 레이스이지만 그만큼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대회를 진두 지휘하는 수십 대의 차량 중 가장 선두에 서는 것도 계시 차량이다. 소구간이끝나는 지점에 비 오는 날에는 밀가루로, 맑은 날에는 테이프로 결승선을 그리는 것도 이 감독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차량 통제, 선수 집합 등 모든 분야를 신경 써야 한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나마 세월이 흐르면서 계시 기술도 발전해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과거에는 모든 기록을 수기로 적고 수기로 계산했지만 지금은 컴퓨터에 기록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순위를 정렬해 주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2012년 제58회 대회를 가장 기억에 남는 한반도 역전마라톤으로 꼽았다. 처음으로 선수단이 경기 파주 민간인통제구역에 들어섰을 때다. 이 감독은 “처음에 민통선 안에서 계시를 할 때는 바짝 긴장을 했었다. 이제는 적응이 많이 된 것 같다”며 “이제는 정말 북녘까지 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부역전마라톤에서 한반도 역전마라톤으로 이름을 바꾼 올해는 더욱 특별하다. 이 감독은 “한반도 역전마라톤은 전국 육상인들이 모이는 화합의 장이다. 올해 많은 팀들이 출전해서 더 기쁘다”면서 “대회가 100회가 될 때까지 후배들이 마라토너라는 자부심을 갖고 뛰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언젠가는 북한 선수들과 함께 달릴 날이 오지 않겠느냐. 나도 몸이 허락하는 한 계시를 계속하겠다”면서 웃었다.
대전=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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