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의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와 역사학계, 법조계, 시민사회 등 외부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해 추진 과정에 위법ㆍ부당행위가 있었는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수십 억 원에 달하는 국정교과서 예산 집행과정도 점검할 계획이다. 조사결과 불법 행위가 발견되면 검찰 수사 의뢰나 징계 등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은 한편의 거대한 블랙코미디나 다름없다. “잘못된 역사를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는 박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시작한 국정화 작업은 2년간 학교 현장뿐 아니라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압도적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필진조차 숨겨가며 내놓은 역사교과서는 무수한 오류와 왜곡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결국 단 한곳의 학교도 채택하지 않는 수모를 당했다. 잘못된 정책이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조사해 낱낱이 밝히는 조치는 당연하고도 필요한 과정이다. 특정 권력집단이 역사와 교육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세우는 의미도 있다.
문제는 위원회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국정화 계획을 발표한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이나 추진을 책임졌던 이준식 전 교육부장관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강제조사권이 없어 청와대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도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국정화 작업은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도하고 교육부가 협력해 진행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와 교육부 책임자가 빠진 조사가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국정화 주무부처 수장으로 작업을 총괄한 이 전 장관에 대한 조사 배제 방침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직무 정지된 뒤에도 이미 숨통이 끊어진 국정교과서를 되살리려고 온갖 꼼수와 편법을 동원했다. 교육 현장의 혼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위만 쳐다본 이 전 장관의 무책임한 관료주의는 책임을 물어 마땅하다. 당시 이에 동조한 일부 교육부 관료들의 모습도 기회주의의 극치였다.
정부가 국정교과서의 실상을 제대로 밝혀낼 생각이라면 교육부차원의 위원회가 아닌 감사원 감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훨씬 효과적이다. 진상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사대상에 선을 긋는 것만 봐도 ‘셀프 조사’의 한계가 드러난다. 국정화를 주도한 거물들 대신 일부 교육부 간부들을 징계한들 어느 국민이 수긍하겠는가. 오히려 국정화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조사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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