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간부, 현철씨에 先보고 논란
주요 국가기관 보안 국정원 책임
경위 파악 등 필요한 조처 있어야
“정권의 레지티머시(Legitimacyㆍ정당성)를 건드릴 수도 있다.” 2012년 대선 다음 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을 다뤘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2017년 대선 때도 이 같은 일이 반복될까.
국정원 전문기자로 이름난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긴 어려우며, 특히 조직 내에 남아 있을 ‘원세훈의 아이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메디치미디어에서 그간 취재 경험을 녹인 ‘시크릿파일 국정원’을 출간했다. 내놓자마자 ‘내곡동 직원들’이 대량 구입해갔다는 말이 나돌더니 곧 4쇄를 찍었다.
책은 모두 5권으로 낸다. 지난해 10월 이후 집중적으로 써둔 글의 분량이 200자 원고지 기준 1만매 정도다.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김 전 국장을 만났다.
-최순실이 화제다. 그런데 이 정도면 국정원이 모를 수 있을까.
“YS정권 말과 비슷한 상황 같다. 당시 아들 현철씨 비선에 의한 국정 농단이 문제였는데, 그땐 국정원 내 김기섭(기조실장)ㆍ오정소(대공정책실장) 같은 이들이 일일보고를 현철씨에게 먼저 가져다 줬다 해서 논란이었다. 최순실의 경우는 지금으로선 뭐라 말하기 어렵다. 다만 주요 국가기관의 보안은 국정원 책임이기 때문에 경위 파악 등 필요한 조처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책 얘기를 하자. 선글라스 끼고 바바리 휘날리면서 총 쏘고 도청하는 활극은 없더라. 의외로 국정원을 위한 정책 제안서랄까,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러고 싶었다. 모든 정보기관들은 ‘익명의 열정’을 내세운다. 그런데 실제론 ‘익명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DJ정부 들어 이종찬 원장 같은 분이 개혁을 시도했다. 워터게이트 이후 CIA는 1970년대에 이미 언론 담당 대변인, 의회 담당 대변인을 두고 정기 브리핑도 했고, 실ㆍ국 단위의 큰 조직은 공개했다. 이후 클린턴ㆍ부시ㆍ오바마 정권에서는 케네디ㆍ닉슨 시절 대통령에게 보고된 ‘일일 보고서’도 공개했다. DJ정부도 이런 걸 차근차근 하려 했다. 지속적으로 추진됐다면 지금쯤이면 우리도 일일보고서 격인 조보(朝報)를 공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보기관의 생산물도 언젠가 공개된다는 자각이 있어야 ‘익명의 유혹’을 막을 수 있다. 이게 원세훈 원장 시절 다 없어졌다. 지금은 통일부 자료도 버젓하게 비공개로 돌리는 게 국정원이다. 원세훈 원장 이후 국정원은 ‘정보의 암흑시대’다. ”
내년 대선도 국정원 개입 가능성
원장 인가받지 않은 공직일 수도
조직 내 ‘원세훈의 아이들’ 조심을
-국정원이라면 다들 떠올리는 생각 중 하나가 내년 대선이다. 안타깝게도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심리전을 벌일 것인가 여부다. 가능할까.
“가능성은 있다. 지금 이병호 원장은 해외정보 파트에서 잔뼈가 굵은데, 원래 국정원 해외 파트 쪽은 ‘국내 파트 때문에 우리까지 매도 당한다’는 불만이 많다. 그런 면에서 이병호 원장이 일부러 일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다만 ‘비인가’ 공작이 있을 수 있다. 원세훈 원장 시절을 겪은 ‘원세훈의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상명하복이 군조직보다 더 강하다는 정보기관에서 그게 가능한가.
“DJ정부 때 신건 원장 사례가 있다. 예전 안기부 시절 ‘국내 정치 공작의 7할은 DJ를 용공좌파로 모는 것’이란 말이 있었다. 그 때문에 DJ는 엄금했고, 신건도 법률가로써 이를 철저하게 따랐다. 불법 도ㆍ감청 장비를 다 없앤 사람이 신건이다. 그런데 공작하던 팀은 이런저런 사람 슬쩍 끼워 넣는 방식으로 감청영장을 받아 불법감청을 했다.”
-법원도 유죄 판결을 했다.
“보고서를 보면 감청 정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는 게 유죄 판결 이유인데, 내가 보기엔 원장이 세세하게 그 모든 걸 일일이 다 파악할 수는 없다. 다소 억울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원세훈의 아이들’이라는 건 실체가 있는 건가.
“그런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도 어떻게 보면 정치권력의 요구에 복무해야 하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정치권 줄대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질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정보기관은 기관으로서의 존재이유를 과시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익명의 유혹’은 거기서 나온다.”
-책의 주장은 CIA가 아니라 모사드를 모델로, 작지만 강한 국정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대북ㆍ해외 첩보에만 집중하는 게 답이다. JP가 중앙정보부를 만들면서 반(反)5ㆍ16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수사권을 가졌지만 민정 이양 뒤에는 검경으로 넘기자 했으나 이게 무산됐다. 그 뒤야 뭐 다 아시는 대로다. 대공수사국 요원들이 부정축재 자산가들 때려 잡고, 반체제 사건 조작하고,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다 떼어내고 대북ㆍ해외 첩보만 해야 한다.”
-정보기관과 투명성은 안 어울려 보인다. 가령 DJ의 햇볕정책이 계면(界面)정책, 즉 북에다 ‘독이 든 사과’를 쥐어주는 계략임이 나와있다. 햇볕정책이 개입(engagement)정책인 이상 예상 가능한 얘기지만,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 아닌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참여정부가 1,000만달러를 북에 건네지 않았느냐는 얘기도 참여정부이기 때문에 결국 시비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얘기 아닌가.
“정보 쪽에서야 국익 문제를 얘기하지만, 사실 공개되어도 큰 탈은 없다. 에드워드 스노든이나 줄리안 어산지 폭로 때문에 국제정치 역학이 바뀌고 관련 정보기관들이 문 닫았던가. 그렇지 않다. 전쟁 관련 극소수 군사기밀을 제외하고는 문제없다. 더구나 정보기관 논리와 언론의 논리는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참여정부 때 송민순ㆍ김만복 갈등
샘물교회 사건 입장 차이로 발화
오늘날 회고록 논란으로 터진 것
-참여정부 시절 김만복 국정원장과 송민순 외교장관 간 갈등도 흥미롭다. 지금의 송 장관 회고록 논란과도 겹치는 듯 하다.
“내 짐작으로 2007년 여름 탈레반의 샘물교회 신도 납치 사건이 분기점 같다. 송 장관은 ‘테러 단체와 교섭은 없다’는 국제 관례를 내세웠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건 강대국 논리이고 우리 국민이 죽어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못 본 척할 수 있느냐’는 입장이었다. 대통령 뜻에 따라 일을 해결한 게 김만복 원장이다. 말하자면 국정원이 외교부를 완벽히 따돌린 것이다. 이후 정상회담 때도 외교부는 전날에야 알았다고 한다. 이 오랜 갈등이 오늘날 회고록 논란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김만복 원장은 그 뒤 행보 때문에 평가가 최악이다.
“맞다. 지금도 국정원 직원들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원장이다. 일국의 정보수장이었다는 사람이 팩스로 입당원서나 내고…. 원래부터 ‘깜’이 아니라는 평이 많았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참여정부 탓이지 어쩌겠나.”
-국정원 사건 취재 가운데 가장 아쉬운 사건은 어떤 것인가.
“아쉽다기보다 충격적인 사건이 2013년 발생한 간첩 조작 ‘유우성 사건’이다. 아무리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다지만, 지금이 어떤 시댄데 설마 간첩 조작까지 하겠나 싶었다. 나름 국정원의 생리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완전히 틀렸다. ‘탈북자 간첩’ ‘화교 간첩’의 가능성은 늘 있었다. 황장엽은 간첩이 5만명이라 했고, 국정원은 2만명 정도라 얘기하는데, 내가 이런저런 통로로 파악한 여러 자료로는 500여명 수준이라 본다. 북한 처지에서야 새 간첩을 키우는 것보다는 탈북자, 화교를 활용하는 게 더 낫다. 그런데 그걸 날조한 거다. 너무 기가 찼다.”
-모두 5권을 낼 예정이라 들었다.
“2권은 국정원의 조직ㆍ예산ㆍ기능을 다룬다. 3권은 기무사ㆍ정보사ㆍ방첩부대 같은 군 정보기관을 다룬다. 4권은 북핵 사태에서 천안함 사건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흐름을, 5권은 세계의 정보기관 사례들을 보여줄 생각이다.”
-2권은 다소 민감한 내용 아닌가.
“국정원 조직ㆍ예산ㆍ기능 자체가 2급 기밀이라, 조금 구체적으로 쓰면 판매금지 가처분이 들어올 수 있으리라 본다. 나로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울 생각이다. 조금 큰 규모의 실ㆍ국 정도는 공개해도 된다. 오히려 4권이 민감하지 싶다. 재밌는 내용이 더러 있을 것이다, 라는 정도로만 해두자.”
-질문이 좀 이상하지만, 어쩌다 국정원을 취재하게 됐나.
“일종의 틈새시장 발굴이었다. 1995년 당시 PD들이 ‘PD저널리즘’이란 말을 만들어서 쓰기 시작할 때였는데, 주간지 기자로 할 수 있는 게 그와 비슷한 것이고 그 영역은 국정원 취재가 아닐까 싶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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