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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배 가을 대목" 아찔한 출항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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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배 가을 대목" 아찔한 출항 이어졌다

입력
2015.09.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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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 관리 대충 대충 안전 무신경

승객 요구 땐 시간ㆍ장소 불문 운항

출항신고 민간위탁, 해경 겉핥기 검문

손님 더 태우려 불법 개조ㆍ정원 초과

7일 전남 완도항은 돌고래호 전복으로 낚시객들의 발길이 뜸하자 낚시어선들이 출항을 하지 않고 있다.
7일 전남 완도항은 돌고래호 전복으로 낚시객들의 발길이 뜸하자 낚시어선들이 출항을 하지 않고 있다.

7일 오전 6시 전남 해남군 북평면 남성항. 5일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전복된 돌고래호가 출항한 이 포구는 가을철 바다 낚시객으로 북적거렸을 평소와는 달리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수십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돌고래호 선장 김모(46)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뒤 남성항 주변 낚시어선들은 영업을 접었다. 실종자들을 모두 찾고 사고가 수습될 때까지 슬픔을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뒤 작은 어촌마을은 오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부 어민들은 낯선 사람과는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고 말도 아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낚싯배 선장은 “외지인들의 낚시문의를 거절하고 예약됐던 단골에게는 전화를 걸어 취소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남성항 인근 완도항을 둘러보니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보이는 낚시어선의 무리한 운항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일부 낚시어선 선주나 선장들은 “지역마다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여 손님이 요구하면 어디든지 간다”고 했다. 실제 선상낚시는 무박2일 기준으로 16만원(식사 포함), 갯바위 낚시는 7만원에 해남에서 추자도까지 운항하고 있다.

출항신고를 민간에 위탁한 데다 해경의 검문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선장 A(52)씨는“해경이 검문 검색을 해도 간혹 인원을 속이는데 신고서(승선명부) 관리를 민간업자가 대행하다 보니 제대로 지켜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그나마 안전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있지만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배를 개조하고 정기 검사 때만 철거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고 털어놨다.

이런 실정은 전국의 다른 소규모 항구에서도 똑같이 재현됐다. 이날 부산 영도구 중리항을 찾은 기자가 낚싯배 관계자에게 배를 타고 싶다고 하자 신고서 한장을 달랑 건넸다. 신분증 확인 절차도 없었다. “배에 타는 걸 해경이 직접 확인하지 않느냐”고 묻자 “해경이 상주하지 않고 신고서는 나중에 걷어간다”고 답했다. 어선의 승선명부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낚시 관리 및 육성법에 따르면, 낚싯배와 같은 레저 어선의 선주는 승선자 신원에 대해 출입항신고서(승선자명부)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마저 자율 신고라서 의무적으로 신원을 확인하지 않아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실정이다. 관리 주체인 해경이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승선자 명단이 작성되는 것이다.

선주의 경우 선박 내 음주를 금지하고 있지만 승객에 대해서는 이런 조항이 없어 사실상 선내 음주를 인정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낚시 관리 및 육성법 제30조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조종을 금지하고 있는 조항이 있지만 승객의 음주에 관한 규정은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부산에서 45년간 조업한 이모(60)씨는 “일부 어선은 사고보험도 들지 않고 낚시객을 인근 연안으로 싣고 갔다”며 “적발되면 큰일이지만 현장 단속이 쉽지 않은 맹점을 이용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20년간 바다낚시 동호인으로 활동하는 안모(52ㆍ광주)씨는 “낚시어선의 사고를 줄이려면 야간출항을 제한해야 한다”며“낚시꾼들은 물때에 따라 고기가 많이 잡히는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해 심야에 높은 파도가 치는 갯바위에 내리는 일도 허다해 위험이 상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여년 동안 해경이 승선원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한번도 없다”며 “정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 검문 때 인근 포구에 초과인원을 잠시 내려놓는 일도 있다”고 폭로했다.

한편 돌고래호 전복사고 실종자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사흘째 이뤄지고 있지만 추가 발견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7일 수색작업에는 해경 함정 25척, 해군 함정 7척, 민간 어선 37척, 항공기 9대 등이 동원됐다. 해경은 사망자들이 추자도 주변 해역 곳곳에서 발견됨에 따라 추자도를 중심으로 반경 20해리까지 방사형으로 3개 수색 구역을 넓게 설정했다. 해경은 또 중앙해양특수구조대, 122구조대 등도 투입돼 수중 수색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해안 표류에 대비해 지역 실정에 밝은 추자지역 주민과 군인과 경찰 등을 투입해 수색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7일부터 8일까지 추자도 주변에 북풍 또는 북동풍이 초속 10∼14m로 불고, 물결도 2∼3m로 높게 일 것으로 예보되면서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내에 설치된 수사본부는 구조된 생존자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와 함께 해경 특공대가 촬영한 전복 선박 내외부 수중 촬영 영상 등을 분석해 돌고래호의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돌고래호 바닥이 긁힌 자국이 없다”며 “스크루 주변에 밧줄이 걸렸을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돌고래호가 너울로 인해 전복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수사본부는 또 돌고래호의 승선원 명부가 허술하게 작성된 경위와 선박 불법개조 여부 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명단에 없는 승선자가 더 있다고 주장하는 가족들이 나타남에 따라 실종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수사본부는 수장감식 작업 결과 돌고래호 선체에서 실종자가 더 이상 없다고 판단, 8일 인양키로 했다.

해남=박경우기자 gwpark@hankookilbo.com

제주=김영헌기자 tamia@hankookilbo.com

부산=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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