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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웃사이더 전성시대

입력
2016.05.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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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통령 당선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당선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누가 필리핀을 이끌 것인가. ① 야당 PDP라반 소속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장, 주정부 검사 출신으로 22년 동안 다바오시장 역임, 주요 공약은 범죄 및 마약과의 전쟁. ② 무소속 그레이스 포(47ㆍ여) 상원의원, 국민 배우의 수양 딸로 미국 유치원 교사 출신, 주요 공약은 빈곤과 기아 문제 해결. ③ 집권 자유당(LP) 소속 마누엘 로하스(58) 전 내무장관, 조부(祖父)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명문가 출신으로 뉴욕 투자 사업가 출신, 주요 공약은 빈곤 해결.

영국 BBC가 필리핀 대선에 앞서 유력 주자로 소개한 후보들의 면면이다. 이력과 경력으로만 보면 두테르테는 필리핀 중앙정치와 거리가 멀다. 이른바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시장 재직 시절 ‘자경단’을 동원해 재판 없이 1,700여명을 처형하는 초법적 행태를 보인 데다 성폭행 농담을 포함한 여성 비하 폭언을 일삼아 도리어 ‘필리핀의 트럼프’로 더 유명하다.

그런 후보가 9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서방 세계는 걱정이 앞서나 보다. 대다수 매체는 ‘강경파 집권하다’는 제목으로 두테르테의 승리를 전하면서 향후 필리핀의 인권문제를 크게 우려했다. 우리도 그의 막말과 기행에 집중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일까. 과거 필리핀 국민이 영화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선택할 때처럼 이번 대선도 장난일 수는 없다. 두테르테를 선택한 필리핀 유권자 약 40%의 지지가 그렇게 가볍지도 않다. 연평균 6%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4분의1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도리어 필리핀 국민이 “빈곤의 원인인 범죄와 마약을 소탕하겠다”는 두테르테의 비전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을 적용한다면 두테르테가 필리핀의 시대정신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두테르테의 원조격인 도널드 트럼프도 미국 사회의 전형적인 아웃사이더다. 트럼프 또한 애초에는 막말과 기행만 집중 부각되면서 이색후보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TV 오디션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 나와 “넌 해고야(You’re fired!)”를 외치던 연예인이 아니다. 지도부가 골머리를 앓고 동맹국이 비토성 국제여론을 조성한다 해도 이변이 없는 한 그는 7월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최종 지명될 것이 확실해 졌다.

이렇다 보니 트럼프에게도 부랴부랴 내재적 접근법을 적용하는 시도가 적지 않다. ‘트럼피즘(Trump+ism)’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중년 백인,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좌절을 요인으로 꼽고 있다. 불법 이민자의 증가와 동맹국 뒤치다꺼리로 인해 일자리를 박탈당하고 국가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확신하는 이들의 분노가 트럼프의 직설적이고 거친 화법을 통해 분출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트럼프가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저널과 NBC방송 여론조사(4월10~14일 실시)가 대표적인데, 트럼프가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도덕성과 경험 등 자질은 떨어지지만 비전과 리더십은 충분하다는 결론이다. ‘국가의 방향성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후보인가’라는 항목에서는 트럼프가 37%로 클린턴(22%)을 압도했다. 이쯤 되면 트럼프 또한 미국의 시대정신이 아니라 하기가 쉽지 않다.

바야흐로 아웃사이더 전성시대다. 얼마 전 런던시장 선거에서도 영국 주류와는 거리가 먼 파키스탄 이민자의 아들이 당선됐다. 주류 내지는 기득권층이 미끈한 말과 화려한 이력으로 기존질서에 안주하려는 반면, 아웃사이더는 시대의 목소리와 변화의 요구를 반영하는 데 더 적극적인 경향이 있다. 주류보다 아웃사이더의 미래비전이 더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김정곤 국제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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