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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험대에 오른 협치, 정치권 따로 시민 따로여서야

입력
2017.09.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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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6개월 전 대선 정국에서 협치는 단연 핵심 선거쟁점이었다. 적폐청산과 정권교체를 앞세운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은 두 차례의 위기에 직면했다. 당내 경선에서 안희정 후보가, 본선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한때 강력한 도전자로 떠올랐다. 당시 두 후보는 공히 “협치와 연정”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이 최종 결정되기 전까지는 적폐청산에 대한 여론이 우위였지만, 탄핵 결정 이후로는 협치와 연정에 대한 지지가 다수여론으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상황을 읽은 결과다. 하지만 태극기 시위로 적폐세력의 재기에 대한 우려, 도전자들의 국정준비에 대한 불안감으로 대세론을 넘지는 못했다.

선거가 치러진 지 반년도 채 안 지난 시점이지만, 협치론이 다시 불붙고 있다. 당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준안이 거부되고 내년도 현재의 의석분포로 볼 때 정부예산안이나 주요법안 통과가 여의치 않다는 현실 인식이 정부여당 내에 확산된 결과다. 청와대는 추석 전 여야대표회담을 추진하고,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정당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여야정 협의체'와는 별개로 국민의당과 별도의 당대표, 원내대표 간 ‘2+2 협의체’ 혹은 정책위원장까지 포함한 ‘3+3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정책연합 혹은 통합론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집권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여소야대 정국 하에서 안정적인 방안으로서 협치를 주장하는 셈이다.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단독으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낭만적 인식에서 냉정한 현실인식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변화다.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협치의 개념이 심각하게 오염된 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협치’ 개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뜻밖의 4당 체제가 형성되면서 정치권과 언론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협치 개념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의식과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협치는 본래 거버넌스(governace)의 번역어로서 정부 주도의 수직적이고 일방적 의사결정에 대비하여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숙의 과정에 기반한 수평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의미한다. ‘건건이 국민의당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표결에 임할 수 없기 때문에 협치를 해야 한다는 발상이나 협치를 정당 간 협력 차원으로 한정하는 것은 애초 본래의 개념과 거리가 멀다. 참여정부 시기 다양한 위원회 제도를 활용하여 정부의 의사결정에 학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키고 공론화하고자 했던 시도들이 본래의 협치 개념에 부합한다. 언론과 정치권의 담론에 묻혀 이제 협치는 민-정-관 협력을 강조하는 거버넌스 개념과 별개로 정치권 내의 협력을 의미하는 말로 굳어졌다.

협치 개념의 오용은 정치권 내부뿐 아니라 반대로 시민차원의 공론화 과정에서도 발견된다. 현재 진행 중인 원전 5,6호기 공론화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정치권의 공론화 과정과 시민공론화 과정이 따로 노는 양상이다. 물론 시민들의 의사를 파악하기 위한 공론화 조사과정만 놓고 보면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론화 과정 자체가 정파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면 시민공론화 과정은 주권자의 시민,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권, 최종 실행자인 정부간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이다. 시민공론화 과정과 정부 및 정치권의 공론화 과정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면 시민공론화가 문제해결의 솔루션이 아닌 또 다른 갈등의 빌미로 전락할 수 있다.

협치가 대의제의 문제를 보완하고 갈등관리의 솔루션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개념으로 돌아가야 한다. 칸막이를 없앤 협치야 말로 진정한 협치다. 협치가 말이 아닌 현실로 작동할 것이다.

정한울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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