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즈텍 제국의 황혼

입력
2017.02.27 14:57
0 0

[기억할 오늘] 2.28

멕시코시티 레포르마 광장의 쿠아우테목 동상. Wikipedia.org
멕시코시티 레포르마 광장의 쿠아우테목 동상. Wikipedia.org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Cuauhtemoc)이 1525년 2월 28일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교수형 당했다. 이미 질식해가던 아즈텍 문명의 숨결도 그렇게 멎었다.

아즈텍 제국(문명)은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중부 고원지역을 중심으로 약 3세기(13~16세기)간 존속했다. 13세기 초 북쪽에서 이주해 온 아즈테카들은 멕시코시티 중심부 텍스코코 호반의 자연 요새 테노치티틀란을 세우고 인근 부족국가들과 군사 동맹을 맺으며 지역의 강자로 우뚝 섰다. 아즈텍 제국은 엄격한 계급구조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 지배체제와 강력한 군사력으로 나머지 군소 부족국가들을 차례로 침략, 복속한 뒤 조공으로 부를 키웠다. 전성기 제국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규모 면에서 유럽의 어느 곳도 넘볼 수 없는, 인구 30만 명의 거대도시였다.

에스파니아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 1484~1547)가 병사 500여 명을 이끌고 테노치티틀란에 들어선 건 1519년 11월 3일이었고, 제국이 멸망한 건 불과 2년 뒤인 8월 13일이었다. 코르테스 군이 말과 소총, 대포 등 진일보한 무기를 갖춘 정예병이라곤 하지만, 압도적 수적 우위의 아즈텍이 단숨에 멸망한 데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었다. 우선 유럽인이 퍼뜨린 황열병 등 전염병과 제국의 핍박을 받아온 군소 부족민들이 코르테스 군에 가세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당시 황제 목테수마 2세가 코르테스 일행을 전설이 전하는 자신들의 선한 신이라 여겨 환대하며 권력을 이양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정복자들은 제국민의 노동력으로 무기를 보강했고, 노예와 인신공양의 제물들을 석방하면서 피지배 부족의 환심을 샀다. 목테수마가 평화적인 해법을 모색하며 코르테스군과 제국민들 사이의 협상을 벌이려다 제 백성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도 제국으로서는 손실이었을 것이다.

당시 아즈텍 제국의 전쟁술, 즉 제국이 안정된 뒤부터 섬멸전으로 일관하던 제국 건설 초기 전술을 버리고 적을 부상 입혀 제압함으로써 포로를 확보하는, 이른바 ‘꽃 전쟁(La Guerra de las flores)’으로 전술을 바꾼 게 패인이라는 설도 있다. 뭉툭한 화살촉과 무딘 흑요석 칼은 에스파니아 군의 갑옷을 온전히 뚫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 쓰러진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된 목테수마의 조카이자 사위 쿠아우테목은 재위 3개월 만인 1521년 포로가 됐고, 4년 뒤 처형됐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