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호 절반 차지하는 구형기차와 그 아래등급 무궁화호에 수유실 없어
그나마 갖춰진 KTX도 좁고 2곳 뿐, 서울역도 시설 미비해 이용객들 고통
"기존 설비 고치려면 비용 많이 든다" 코레일은 수유실 확충에 난색 표시
추석을 맞아 대구의 큰 집을 방문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귀성길에 김미애(35·여)씨는 기차 안에서 아이를 안고 씨름했다. 김씨는 이제 막 10개월에 접어든 딸의 수유와 기저귀 교체를 위해 시속 300㎞로 달리는 고속열차를 아이를 안은 채 3칸이나 가로질러 가야 했다. 간신히 다다른 수유실은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선 상황. 한참을 기다려 들어간 수유실에는 간이의자 하나와 접이식 기저귀 교환대 하나가 전부였다. 김씨는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면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좁고 더워 수유하기에 너무나 불편했다”고 말했다.
서울역 2층 수유실 앞에서 만난 윤기홍(31)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6개월 된 딸을 둔 윤씨는 “신경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왔는데 수유실이 좁고 불편하다며 집사람이 이용하기를 꺼려 해 결국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수유실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윤씨는 “수유실에 입석으로 가는 사람들이 앉아 있기도 하고 짐을 넣어놓기도 한다”며 “수유실 입구를 버티컬 블라인드로 여닫는 구조로 만들어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서울역에서 만난 아기 부모들은 수유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기차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2004년 도입한 KTX는 현재 열차 1대당 8량과 16량에 수유실 2곳이 갖춰져 있다. KTX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새마을호 가운데 45%를 차지하는 구형 새마을호와 그 아래 등급인 무궁화호에는 아예 수유실이 없다. 그나마 올해 5월 도입된 itx새마을호의 경우 열차 1대당 수유실을 하나씩 두고 있으며 기존 KTX에 비해 공간이 넓어졌다.
하루 평균 30만명, 명절 때는 50만명 가까이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역도 수유를 해야 하는 엄마들에겐 불모지나 다름 없다. 서울역 기저귀 교환대는 2층 남여화장실 3곳에 각각 한 개씩, 3층 남여화장실 2곳에 한 개씩 총 10개가 있는데 이용객이 많지 않은 편이다. 이용하기에 불편하고 위치도 안 좋은 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온 최모(33·여)씨는 7개월 된 아들의 기저귀를 제대로 갈아줄 곳을 찾지 못해 2시간 내내 아기를 안고 왔다. 서울역에 도착한 최씨는 기저귀를 교환하려고 급히 여자 화장실을 찾았으나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최씨는 “딱딱한 플라스틱 기저귀 교환대는 불편하고 비위생적으로 보였고 입구에 설치돼 있어 화장실 앞에 줄 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이용하기가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역사 내 수유실로 향했다. 하지만 수유실도 엄마들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울역사 2층 수유실은 쇼파 의자 6개와 기저귀 교환대 1개, 정수기와 전자레인지, 선풍기와 온열기가 한 대씩 비치돼 있었다. 3층 수유실에는 기저귀 교환대 없이 달랑 긴 나무의자 2개만 비치돼 있었다. 서울역 2층 수유실에서 만난 최선경(38)씨는 “수유실이 백화점이나 마트 만큼 깨끗한 것 같지 않다”며 “대부분의 수유실에 비치돼 있는 수유쿠션이나 간이 세면기, 온도계도 없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구형 객차에 수유실을 만들려면 기존 설비를 뜯어내야 해 비용이 많이 든다며 수유실 확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KTX 수유실의 경우 버티컬 블라인드를 문으로 교체할 예정이나, 서울역사 수유실은 당장 정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권재희기자 luden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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