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 삼성서울병원의 부실한 위기관리 대응의 책임을 통감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저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말했다. 삼성이 지난 달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이 부사장을 선임, 그룹의 후계 구도를 공식화한 이후 그가 삼성을 대표해 공개석상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삼성서울병원의 잘못에 대해 사과와 책임의 진정성과 무게감을 보이기 위한 의미로 읽힌다.
이런 점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선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그는 “제 자신 참담한 심정” “책임을 통감” 등으로 최대한 몸을 낮췄다. 일부라도 변명하는 등의 꼬리를 남기지 않고 잘못을 전폭적으로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대표기업의 새 수장으로서 위기 관리 능력의 첫 시험대를 무난히 치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부회장의 사과에 대한 최종평가는 결국 그에 걸맞은 약속이행의 결과에 달렸다.
메르스 사태를 둘러싼 삼성서울병원 발(發) 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서울병원의 초기 대응 실패로 확진 환자 175명중 절반 이상이 감염됐다. 이 부회장이 기자회견을 한 당일에도 삼성서울병원을 다녀간 174번 환자가 추가로 발병했지만, 아직 정확한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확진 환자를 치료하던 이 병원 의료진들이 잇따라 감염된 것도 미흡한 방역체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염 공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음압병실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도 병원의 규모와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이 한국 대표병원으로서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이 부회장이 음압병실을 확충하고, 호흡기 감염 환자와 일반 환자의 출입구를 따로 만드는 등 위기관리 시스템과 응급진료 프로세스를 전면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전염병 선제적 대응을 위한 구조적 틀을 갖추는 등 획기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감염질환의 예방활동과 백신, 치료제 개발 지원에 나서겠다는 약속은 삼성서울병원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번 사태가 크게 보아서는 평소 효율과 이익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삼성식 경영방식의 필연적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적어도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병원만큼은 기업과 달리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책임을 우선하는 다른 차원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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