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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입력
2017.05.0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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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문재인 재정ㆍ복지에서 큰 정부 지향

안철수ㆍ유승민 등은 비교적 작은 정부

어떤 정부가 좋을지 차분히 선택해야

마치 벼락치기로 공부한 뒤 어려운 시험을 앞둔 느낌이다. 조기 대선 정국이 끓어오르면서 그야말로 격동의 50여 일이 지나갔다. 대선 후보들이나 유권자들은 단거리 주자처럼 전력 질주해야 했다. 저마다 새로운 나라를 일구겠다며 정치, 경제, 안보, 복지공약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하지만 너도나도 좋은 얘기만 하다 보니, 그 얘기가 그 얘기 비슷하게 됐다. 게다가 비방과 네거티브, 심지어 가짜 뉴스까지 버무려졌다. 누가 무슨 공약을 했는지, 어떤 정책이 더 좋은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뒤섞여 곤죽처럼 뭉뚱그려졌다.

이쯤 되면 유권자들의 뇌리엔 이념이나 공약은 소실되고 그저 TV토론 등을 통해 형성된 대선 후보들의 어렴풋한 이미지만 주마등처럼 맴돌지 모른다. 누구는 정의롭고 따뜻해 보였고, 누구는 돈키호테 같지만 통쾌했을 것이다. 또 누구는 막상 지켜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고, 다른 이는 뜻밖에 진지하고 믿음직했을 것이다. 물론 이미지도 합리적 판단의 총합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젠 이미지에 막연히 끌려가기보다 어떤 후보가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지 다시 한 번 차분히 짚어볼 때가 됐다고 본다.

구체적 공약들을 잠시 내려놓고 각 대선캠프를 드론 정도의 높이에서 조망해 보면 뭉뚱그려진 중요한 차이가 새삼 드러난다. 그 중 하나가 ‘큰 정부’를 지향하느냐, ‘작은 정부’를 지향하느냐의 문제다.

큰 정부는 고용이나 복지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 등에서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막대한 재정을 썼던 미국 뉴딜정책의 토대인 케인즈 경제학과, 정부가 민생을 최대한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의 지향이 돼왔다. 반면, 작은 정부는 경제는 가능한 한 시장에 맡기고, 복지에서도 국민의 자조 노력을 지원하는 선에서 정부의 역할을 자제하는 게 좋다는 생각에 바탕하고 있다. 고전적인 생각이고 보수 진영이 표방해온 바다. 큰 정부론이 정의와 평등을 앞세운다면, 작은 정부론은 자유와 활력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요즘엔 두 정부 형태가 대개 상호보완적으로 융합된다. 글로벌 경제체제에선 아무리 큰 정부라도 경제 개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아무리 작은 정부라도 양극화 현상 등을 외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는 정책 우선순위에 영향을 줘 실제론 큰 결과의 차이로 이어지므로 유권자로서는 여전히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문재인 후보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지금 민주당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근거 역시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81만 개의 정부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공약이나,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의지 등이 모두 큰 정부를 지향한다. 그러자면 관료조직도 커지고 공무원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세금도 올려야 할 것이다. 국가 자원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이 흐르게 되는 대신, 조세 부담은 커지고 시장의 자유도 위축될 수 있다.

반면, 안철수와 유승민 후보는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작은 정부론 쪽에 가깝다. 단일화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이들 역시 정부가 양극화 해소나 공정경제 실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들은 관료적 비효율성이나 국가 재정의 한계 등을 감안해 정부의 역할은 적정선에서 절제돼야 한다고 본다. 산업 규제완화를 강조하며 ‘일자리 창출은 민간이 주체’라고 말하는 안 후보나, 유 후보의 ‘중 부담, 중 복지’ 주장은 모두 이런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큰 정부로 가는 게 좋을지, 작은 정부로 가는 게 좋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어느 쪽 후보든 그게 최선의 길이라고 믿고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최악의 결과는 늘 최선의 의도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역대 대선에서 슬기로운 결과를 만들어 냈던 유권자들이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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