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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최ㆍ박게이트 신드롬

입력
2016.11.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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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허탈로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고 난리다. 최태민 사교와 관련된 정신질환 여부와 박 대통령의 심리분석에 대한 말도 분분하다. 대통령이 “진실하며 진중하고 허영이 없다”고 믿었던 이들이 배신감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이 만든 허상이 깨지면서 박근혜 브랜드에 대한 집단최면에서 깨어나 받는 충격이다.

“간결하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원칙의 정신적 지도자형”이라던 박근혜의 정신건강이 최근 급격히 나빠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문화 인류학자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서 쓴 대로 박근혜라는 부족장의 유통기한이 다 된 것뿐이다. 국기 문란이라며 대통령과 비선실세를 옹호하던 이들 중 일부는 정말로 대통령의 인격적 결함과 비선의 횡포를 모르고 꼭두각시 노릇만 했을 수도 있지만, 알면서도 방관하고 비호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잘 마무리했다면 과거의 부패 정권들처럼 주변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이권을 나눠주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평안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할 이들도 있을 게다.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들의 운명은 참으로 비극적이었다. 난데없이 해직된 사람들, 세월호 같은 비극에 더해 일베나 어버이연합 같은 이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해야 했던 이들이 하나둘인가. 아폴론에게 예언의 능력을 받았지만 사랑을 거절한 대가로 설득력을 못 갖춰, 혼자 예언했으나 결국 전쟁을 막지 못한 트로이의 마지막 공주 카산드라보다 더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다. 정권이 팔팔하게 살아 있을 때 그 횡포를 문제 삼으면 추방당하거나 벌 받는 게 관행인 탓이다. 다 떠나서, 논리적으로 박 대통령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했던 이정희 변호사에 대한 보통 주부들의 격노를 기억해 보자.

태블릿PC 파일 공개로 이제 좀 달라질까 했는데, 역시 이슈 선점에 능한 선거의 여왕답게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사람을 국무총리로 내세웠다. 얼굴마담 국무총리와 바지대통령이 보폭을 잘 맞추어 관리를 잘하면 안정적(?) 보수 정권을 재창출해 낼 수도 있다고 믿는 건가. 경제가 점점 더 고꾸라지면, 이른바 “반대만 일삼는(?) 무능한 야당”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대세력이 자중지란에 빠지게 하는 치밀한 전략이라고 자평할까. 국민의 배신감도 때가 지나면 다시 감성팔이에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일까. “불쌍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누가 남았어, 사람이면 그렇게 모질어선 안 되지, 비난하는 너희들은 얼마나 깨끗한데…” 하는 식의 온정주의에 기대하는 것일까.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냉소주의에 빠진 다수 지식인의 자조가 일반인의 패배감으로 이어져 “이민” 아니면 “출산 거부”라는 수동공격적 저항만 남는다.

더 우울한 시나리오도 있다. 북한이라도 쳐들어오면 어쩌겠냐며 제2의 박근혜를 부족장으로 삼아 과거로 돌아가려는 세력이 다시 힘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까 그게 제일 두렵다. 북한에게 싸움을 걸어 친위 쿠데타 일으킬까 봐 걱정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수상한 군부 쿠데타가 실패한 후, 터키는 독재자의 나라로 변하고 있긴 하다. 재스민 혁명 이후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도 마찬가지다. 4ㆍ19 혁명과 광주항쟁의 희생을 욕보인 군부정권의 쿠데타, 반쪽만 성공한 6월 항쟁 역사가 되풀이되면 어떡하나 큰 걱정이다. 선진국도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 중에 퇴영적인 수구 세력이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은 선례가 많았다. 혹시라도 폭력적인 방식으로 국민이 의사를 표현하면 언제든지 빌미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최ㆍ박게이트는 사치의 극을 달리던 신라 시대, 연인이자 삼촌이었던 각간 위홍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결국 왕위를 이양했던 진성여왕, 역시 연인 김치양과 합작해 목종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던 고려 시대의 천추태후를 연상시킨다. 원래부터 그들이 음탕과 사치를 일삼던 여성들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나름대로 여러 치적을 남기었으나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연인과 측근들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되면서 다른 세력의 견제를 받아 쫓겨났다는 설도 있다. 두 여인의 성격 결함이나 음탕한 사생활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는 다른 귀족들의 ‘부족장 바꿔치기’가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최ㆍ박게이트도 지나치게 개인의 일탈로 몰아간다면 썩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

원시 부족국가나 현대 민주국가나 따지고 보면 원형적으로는 비슷하다. 우리의 이기심과 허영과 무지가 우리 정신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부동산세 물렸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죽던 날 좋다고 춤추던 이들, “BBK고 뭐고 살인자면 어때, 돈만 잘 벌게 해 주면 되지” 하던 이들, 조실부모한 불쌍한 사람이라며 부패와 전횡에 눈감았던 이들이 없었어도 최ㆍ박게이트가 가능했을까.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운다 해도, 정작 병든 부분을 도려내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박근혜와 최순실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힘 있는 이들의 보복이 두려워 비겁하기 짝이 없던 나부터 우선 통렬하게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무력감은 살아 있는 이들을 좀비로 만든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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