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청탁한 부동산개발사 대표가 3개월 전 제출했는데 수사 안해
檢 "금품 관련해 따로 고소장 내면…" 유력인사 소액 수사 기피 관행 탓도
야당 중진의원이 취업청탁을 대가로 1,000만원을 수수했다는 의혹(본보 3월 3일자 1면)과 관련해 검찰이 금품전달 시기와 장소, 방식을 상세히 기술한 공여자의 진정서를 약 3개월 전 제출 받았는데도 수사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금품수수 사건에서 1,000만원 이하는 적극 수사에 나서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1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부동산개발업체 C사 대표 장모씨는 A의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 형식의 진정서를 지난 3월 말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 조종태)에 제출했다.
장씨는 진정서에서 동업자 관계에 있던 조모(55) 변호사의 주선으로 2009년 4월 10일과 22일 서울 강남구 소재 R호텔 2층 바에서 A의원을 만나 현금 500만원을 담은 노란 대봉투를 두 차례에 걸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 해 3월 조카가 A의원 지역구에 있는 대기업 건설사의 1, 2차 입사시험에 합격했는데 마침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조 변호사가 “면접시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A의원과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장씨는 진정서에서 4월 10일 동석한 조 변호사를 통해 돈을 전달한 후 조카의 면접시험이 임박한 시점에 한번 더 A의원에게 부탁하기 위해 같은 달 22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진정서에는 두 번째 돈을 건넨 자리에서 A의원이 “취업은 걱정 마시라”고 답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후 조카가 최종 탈락하게 되자 조 변호사는 “A의원에게 돈을 돌려 달라고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진정서의 요지이다. 장씨는 지난해 5월과 올해 2월 11일 A의원을 다시 만난 자리에 동석했던 인물까지 거론하며 검찰이 수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검찰은 진정인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장씨가 자신의 고소사건과 관련해 제출한 진정서에 A의원의 취업청탁 관련 부분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장씨가 따로 고소ㆍ고발장을 제출한다면 수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력인의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금품수수는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선 특수수사 부서의 관행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인의 경우 금품수수 액수가 적으면 수사에 품은 많이 드는데 반해 ‘표적수사’ 논란 같은 역풍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암장되는 사건이 많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액수가 수천만원이라도 된다면 모르지만, 좀 적어서 선뜻 나서기가 그렇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에도 서울중앙지검은 한 고위 공직자가 500만~1,000만원가량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기관통보만 한 뒤에 기소하지 않았다. 당사자는 사퇴했으며, 사퇴 이유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용퇴’로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검찰은 “1,000만원 중 500만원 정도만 자금인출 시점이 진술과 비슷했다”며 소액임을 감안, 사건에 적극 매달리지 않았다.
내년 9월 말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소액 금품수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한이 확대되는데 이런 관행을 계속 용인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용민 변호사는 “수수금액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서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은 국민에게 위임 받은 검찰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며 “정치자금법 위반과 같이 피해자가 없거나 불분명한 경우 일반 형사범죄보다 대중의 비난이 적을 수는 있지만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크기 때문에 액수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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