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사이트라 국내법 제재 불가
경찰ㆍ방통위 사실상 방치하자
사설업체 고용해 IP 추적하거나
텀블러 상대 美 현지 소송 나서
“유포자가 누군지 짐작이 가도 처벌할 방법이 없어요.”
대학생 A(19)씨는 최근 자신의 얼굴과 남의 나체 사진을 합성한 음란 게시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텀블러’에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소문 중에 고교 동창 7명도 실명과 함께 합성사진이 유포됐다는 걸 알고 충격에 빠졌다. 섬뜩한 건 그 다음이었다. 남자 동창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전화한 뒤 몇 십 분만에 해당 계정이 사라져있었던 것. 우연이라고 보기엔 꺼림직해서 경찰을 찾았지만 “텀블러 수사는 어렵다”가 결론이었고, 그나마 “SNS에 사진 올리지 말라”는 조언이 전부였다. 결국 A씨는 사설 업체를 고용해 증거 수집에 나섰다. “왜 피해 여성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나요.”
‘여동생을 강간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 와 2,200여명이 공유(리블로그)하는 등 텀블러가 성범죄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기반 SNS인 텀블러는 익명성이 강하고, 가입자 정보를 수사기관에도 제공하지 않는데다 자체 음란물 관리도 하지 않고 있어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이 8월 텀블러 디지털 성범죄 계정 125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일반인 여성의 신상을 공개하며 ‘지인 능욕’한 계정이 56%(70개), 미성년자 음란물을 올린 계정이 74.4%(93개)에 달했다. 여동생 누나 어머니 등 가족 대상도 7.2%(9개)였다. 125개 계정 모두 같은 달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됐지만 그 중 64%(80개)가 10일 현재 버젓이 운영 중이다. 디지털정보삭제 전문가 이덕영씨는 “8월 유통된 몰카 사진ㆍ영상 500개 중 학교 배경이 28.6%(143개)로 미성년자 피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경찰과 방통위도 텀블러에겐 속수무책이다. 미국에 본사가 있어 국내법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 경찰청 관계자는 “텀블러에 영장을 보내도 회신이 거의 오지 않는다”며 “신원 특정을 위해 각종 기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방통위 또한 8월 텀블러에 자율심의협력시스템 가입을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이런 이유를 핑계로 해당 기관들이 손 놓고 있는 분위기도 피해를 키운다. 오죽하면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로 국가가 범법행위를 눈감아서는 안 된다’라며 30일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엔 열흘 만에 6만명 넘게 서명했을 정도다.
피해 여성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실정이다. 지난달 텀블러에 나체합성사진과 신상이 유포된 회사원 B(25)씨는 “어차피 수사가 안 된다”는 경찰 얘기에, 아예 디지털정보삭제업체를 고용해 유포자 60여명의 IP 주소를 수집하는 등 직접 추적에 나섰다. B씨는 “해당 텀블러 계정이 내가 아는 남성 페이스북 계정과 동일한데도 같은 사람임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며 “가해자에게 제대로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고소장을 제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 법원에 직접 호소하려는 피해 여성들도 있다. DSO는 “내년 1월 중 텀블러를 상대로 명예훼손, 아동성범죄영상유포 등 혐의로 미국 현지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캐슬린 김 변호사(미국 뉴욕주)는 “미국 주의 절반 가량이 사이버 스토킹ㆍ괴롭힘을 형사처벌하고 있다”며 “위법적 게시물에 대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의 책임을 추궁해 텀블러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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