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 아들 순수학문 열정 물리학서 진로 바꿔
대회 계기 학계서 한국위상 급상승 젊은 학자들에게 큰문제 도전 주문
‘2014 세계 수학자대회-서울대회’의 기조연설자인 황준묵(51) 고등과학원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수학은 국제 수학계에서 저평가돼 있었다”며 “기쁘고 들뜬 마음보다는 우리의 수학능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수학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한국인이 기조연설을 하는 것은 황 교수가 처음이다.
황 교수는 ‘한국의 아인슈타인’을 꿈꾸던 물리학도(서울대 물리학과)였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 진로를 수학으로 바꿨다. 순수학문에 대한 고집에서다. 황 교수는 “당시 한국은 산업화 과정이어서 순수 물리학을 공부하기 쉽지 않았다”며 “물리학이 반도체, 통신기술 등 실용성을 강조하는 걸 보고 진로 변경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 때는 요즘같이 전과(轉科)나 부전공 제도가 없었던 터라 진로를 바꾸려면 전공 강의 외에 수학 강의를 따로 들으며 두세 배로 공부해야 했다. 황 교수와 함께 어려운 결정을 한 사람이 이번 서울대회 조직위원장인 박형주 포항공대 교수다. 졸업 후 대학원은 하버드대(황 교수)와 버클리대(박 위원장)로 나뉘었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운이 참 좋은 사람들이죠.”
황 교수는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 선생과 소설가 한말숙 선생의 아들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수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익숙하다고 했다. 연구 발표 때 청중과 호흡을 같이 해야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데,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보듯 논문 발표 때도 청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훌륭하면서도 이를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소설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세계대회를 유치한 만큼 이제는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 메달’을 우리나라 학자가 수상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전망했다. 노벨상과 달리 필즈 메달은 만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들에게만 수여한다. 수학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급상승하고 있고, 우리와 비슷한 수준인 베트남 출신 수학자가 2010년 필즈 메달을 수상한 것도 호재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수학자들이 국제 수학계의 핫 토픽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정보교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국내 수학계의 실적 위주 풍조도 개선돼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국내에서는 논문 수 위주로 ‘빨리빨리’에 길들여져 있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큰 문제에 도전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긴 호흡과 멀리 내다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60분 발표 분량의 기조 연설 준비는 90% 이상 완료된 상태다. 원고는 지난 4월 검토를 끝냈고 이를 효율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프리젠테이션용 슬라이드를 손질 중이다. 박사 과정부터 동문수학해 친분이 두터운 홍콩 출신의 저명한 수학자 목(MOK)교수의 도움도 톡톡히 받았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복소기하학’에 대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할 예정이다.
‘2014 세계 수학자대회-서울대회’는 내달 13~21일 열린다. 18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회 이후 27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에서는 전 세계 수학 석학들이 모여 다양한 강연을 펼치고, 수학을 주제로 한 대중문화 체험 행사들도 진행된다. 특히 이번 대회는 ‘늦게 출발한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란 슬로건으로 개발도상국 수학자 1,000명을 초청, ‘수학 한류’를 전파할 예정이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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