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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몫까지 사세요” 700만원 남긴 기초수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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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몫까지 사세요” 700만원 남긴 기초수급자

입력
2018.01.23 09: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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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돌봐줬던 노부부에

60대 세입자가 돈다발 유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30년 전 이혼 후 가족과 연락을 끊고 혼자 살아 온 A(65)씨. 그를 유일하게 돌봐 준 건 집주인 B(70)씨 부부였다.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A씨가 부산 사상구의 이 단칸방 주택에 세 들어 살게 된 건 10년 전이다. 약 2년 전부터 일자리가 끊겨 기초생활수급대장자로 도움을 받으며 생활해 온 A씨 옆엔 항상 B씨 부부의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A씨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B씨 부부는 틈틈이 음식을 챙겨주거나 건강을 염려하는 말을 자주 건넸다. 또 쓰지 않는 창고도 A씨에게 내줬다.

하지만 이러한 B씨 부부의 관심이 꽁꽁 언 A씨의 마음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안 좋아진 건강과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고 생각한 A씨는 지난 22일 정오쯤 자신의 집에서 농약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A씨는 며칠간 안보이자 걱정이 돼 들른 B씨에 의해 발견됐다.

B씨는 경찰 진술에서 “A씨가 평소 치과와 발목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최근에 신변을 비관하는 말을 자주 사용해 걱정이 돼 전날 저녁에 집사람이 잡채를 들고 A씨 집을 방문했는데 어둡고 인기척이 없어 사람이 없는 줄 알고 그냥 나왔다”며 “다음날 오전에 다시 가보니 숨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A씨 방안에서는 유서와 함께 5만원권과 1만원권 등으로 구성된 700만원 가량의 돈다발이 발견됐다. 달력 뒷면에 쓰인 유서에는 B씨 부부에게 건네는 감사의 뜻과 함께 “제 몫까지 오래 사세요. 저는 저승으로 갑니다. 돈 놓고 가니 잘 쓰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장례 절차와 조사 등으로 유족을 찾은 결과, 사하구 당리동에 살고 있었던 A씨의 친누나는 1년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그나마 여동생과 연락이 닿아 고인을 인계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의 방에 외부침입흔적이나 특이외상 등이 없고, 유서와 농약병이 발견된 점 등을 미뤄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원인을 수사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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