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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간접고용

입력
2015.02.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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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사전에 따르면 간접고용 근로자는 생산지원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간접고용은 사전적 의미와 다르다. 우리 개념으로는 기업이 시장 위험을 외부화하기 위해 선택하는 고용전략으로 간주된다.

우리 노동시장에서 간접고용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먼저 규모가 크고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유형은 ‘사내도급’이다. 사내도급의 경우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가 분리돼 있으며 업무의 지시와 감독 등 인사관리의 책임을 고용사업주가 담당한다. 즉, 일하는 공간만 원사업주의 사업영역에 있지 업무와 관련한 지시ㆍ감독은 모두 고용사업주가 담당한다. 이 지시와 감독의 역할 경계가 무너질 때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두 번째는 파견 유형이다. 파견은 32개 업종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일종의 특수목적형 고용유형이다. 일부 전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특별 업무에 한시적 수요가 발생할 때 활용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근로자는 파견사업주와의 고용관계하에서 ‘사용사업주의 지휘ㆍ명령을 받아’ 근로를 제공한다.

요컨대, 사내도급의 경우 사용사업주가 업무의 지시 및 감독을 할 수 없지만 파견은 가능하다. 따라서 사내도급 관계에서 사용사업주가 업무지시와 감독 등을 하게 되면 도급으로 위장된 파견, 즉 불법으로 간주된다. 우리의 경우 파견근로는 별도 법률로 규율되지만 사내도급의 경우 제도적 관리체계가 미비하다. 이런 이유로 사내도급은 확산 가능성이 높은 반면 파견은 제한적이다.

우리 노동시장에서 사내도급의 확산은 1997년 외환위기를 주요 원인으로 한다. 그 때 이후 사내도급의 수와 비중은 이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2007년 기간제법 도입 또한 확산의 주요 계기가 됐다. 이런 사내도급은 통계 조사상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고, 전수 파악을 위한 별도의 조사를 진행하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확인할 수 없으나, 고용형태 공시 데이터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의 20% 이상이 사내도급 근로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사내도급은 왜 확산됐을까? 가장 먼저 고려될 수 있는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의 개방에 따른 외자도입이 본격화하면서 기업 지배구조가 급격하게 변했으며 그에 따라 자본수익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확대됐다. 수익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하에서 장기고용은 불가능하며 결국 사내도급이 고용비용을 외부화하는 수단으로 선택됐다.

두 번째로 기업별 노조 체제도 사내도급의 확산을 자극한 주요 원인이다. 기업단위 교섭구조는 내부노동시장을 형성했고 내부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사간 담합을 유인했다. 특히 외환위기를 계기로 고용유연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규직 근로자들 사이에 고용불안 의식이 팽배해졌다. 결국 사내도급이 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위험을 관리하는 버퍼로 선택됐다.

세 번째, 인건비 절감 또한 사내도급 활용의 주요 유인이다. 사내도급은 인건비 외에도 각종 노동력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었다. 특히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비용전략은 불가피했으며 이 경우 사내도급은 매력적인 방법이었다.

사내도급 확산의 마지막 이유는 관련제도의 미비에 있다. 현재 사내도급의 제도적 규율 장치는 고용노동부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외에는 마땅한 것이 없다. 공정거래관련 규제가 있지만 이는 사업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근로자를 위한 수단은 아니다. 이런 제도적 조건이라면 파견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한다 하더라도 사내도급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사내도급의 비교우위가 파견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기계, 조선 및 호텔 등 주요 산업에서 관리직을 제외한 생산 및 서비스직 전부에 사내도급 근로자를 활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법적 부담도 줄이면서 고용 위험과 임금 부담을 외부화할 수 있고 아울러 계속 고용이 가능해 숙련 수준을 유지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변화를 우리나라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급진적 전환으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사내도급으로의 유인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 모색과 관련 규율체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간접고용이 지배하는 노동시장은 지속하기 어렵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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