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이민 개혁 행정명령을 둘러싸고 열린 연방대법원 공판에서 진보와 보수 양측이 정면충돌했다.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사망 이후 4대 4로 갈려 있는 연방대법원이 찬반 동률 판결을 내릴 경우 하급심 판결이 유지돼 오바마 대통령의 새 이민정책은 효력을 잃을 수도 있다.
공판의 쟁점은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무허가 이민자들이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 자녀를 둔 경우 강제로 추방되는 것을 유예하고 유예된 기간에는 합법적인 체류를 보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모추방유예(DAPA) 행정명령을 인정할 것이냐 여부였다. 앞서 텍사스주를 비롯한 미국 26개 주는 행정명령이 위법하다며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연방항소법원은 지난해 10월 행정명령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날 공판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나 친(親)이민자 판결을 자주 내려왔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법무부 측에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법을 초월했는지 여부를 집요하게 물었다. 그간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도 “불법이민자의 법적 지위 문제는 행정이 아닌 입법의 영역”이라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1,100만명의 외부인들이 그림자 아래서 살고 있고, 그들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기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옹호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양측 동률로 갈릴 경우 전심 법원의 판결 효력이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4대 4 판결이 나오면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에 DAPA 이민정책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단 4대 4 판결은 재판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취급하고 판례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신임 대법관이 임명된 후 유사한 행정명령을 두고 다시 법적 효력을 다툴 가능성은 남아있다.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한 후 오바마 대통령이 메릭 갈랜드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장을 차기 대법관으로 지명했지만 공화당이 인준을 거부하면서 진보 성향 대법관 4명과 보수 성향 대법관 4명이 대법원 재판에 임하고 있다. 이 때문에 4대 4 판결은 당분간 자주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보수 성향 비노조 교사들이 교원노조의 비노조원에 대한 노조비 강제 징수에 반발해 제기한 소송에서 4대 4 판결이 나왔으며 종교단체가 피고용인의 피임수술 비용부담 의무에 항의해 제기한 재판도 대법관들 입장이 4대 4로 갈려 있다.
대법원의 판결은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주당 후보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자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공화당 대표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차단하고 이민자들을 강제추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공화당의 외면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DAPA를 도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4대 4 판결이 오바마 행정부를 향한 공화당의 ‘월권’비판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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