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엄정화가 지상파방송 드라마로는 8년 만에 시청자를 찾았다. MBC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차갑고 도도하지만 마음 여린 스타가수 유지나로 변신해 열연 중이다. 화려한 가수의 모습 이면에 여자로서 잃어야 했던 삶과 유명인의 외로움을 녹여내고 있다. 방영 초반 시청률은 무난하다. 5일 방영된 2회 시청률은 첫 회보다 2.6%포인트 상승한 14.6%(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하지만 극의 전개를 두고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2회부터 등장한 불륜 소재, 설득력 없는 유지나의 행동, 어색한 카메라 구도 등 시대착오적인 극의 구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50부작을 이끌어갈 엄정화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엄정화는 드라마보다 충무로에서 강세를 보인 배우다. 그동안 활기차고 열정적인 커리어우먼(‘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엄마(‘댄싱퀸’) 등 다양한 역할로 흥행 배우의 이미지를 이어왔다. 가수 엄정화를 ‘믿고 보는 배우’로 만든 과거 작품들을 돌아봤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관능적인 조명 디자이너 연희(엄정화)는 지적인 대학 강사 준영(감우성)과 소개팅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연희는 준영과 만나면서도 경제적 조건이 더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 결국 연희는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고 부유한 다른 사람을 택한다. 결혼제도의 부조리함과 결혼에 대한 환상을 짚은 작품이다.
엄정화는 이 영화에서 수위 높은 정사 장면을 소화했다. 가요계 톱스타로 입지를 굳힌 후 과감한 노출 연기를 감행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이후 엄정화는 영화 ‘싱글즈’(2003)에서 개방적이고 화통한 성격의 여성을 연기하며 그만의 커리어우먼 캐릭터를 구축했다.
‘오로라 공주’(2005)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 ‘싱글즈’ 등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당차고 활기찬 커리어우먼 연기를 선보인 엄정화가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작품이다. 배우 출신 방은진 감독의 첫 장편영화 ‘오로라 공주’는 6살 난 딸의 살해 사건과 연관된 5명을 연쇄살인하는 어머니의 복수극을 그린 스릴러 영화다. 엄정화가 데뷔 이래 첫 단독 주연 영화로 생소한 장르를 택해 눈길을 모았다. 방 감독에 따르면 엄정화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반신반의하는 방 감독을 붙잡고 적극적으로 설득했다고 한다. “다양한 역할이 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던 찰나 눈에 들어온 시나리오라 역할에 욕심을 냈다.
‘오로라 공주’에서 엄정화는 딸을 잃고 이성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해야 했다. 그는 극 후반부 살인범이 딸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장면에서 정신이상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살려 호평받았다. 엄정화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스스로 노출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배우 문성근과의 정사 장면과 욕조에 몸을 담그는 장면에서 상반신을 드러내 생생한 장면을 연출했다. 엄정화는 ‘오로라 공주’로 기존 이미지와 다른 연기를 선보이면서 배역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게 됐다.
‘해운대’(2009)
관객 1,000만명을 모은 재난영화 ‘해운대’는 엄정화의 최대 흥행작이다. 엄정화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인을 연기하며 거대한 쓰나미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사람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발가락뼈가 골절되고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할 정도로 작품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는 영화 속에서 중심인물은 아니었다.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았고, 인물 설정이 단조로워 연기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1,000만 관객과 만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는 점에서 그의 출연작 목록 중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가 됐다.
‘댄싱퀸’(2012)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 황정민과 6년 만에 다시 만났다. 젊은 시절 댄스가수를 꿈꾸며 ‘신촌 마돈나’로 불렸던 정화가 결혼 후 동네 에어로빅 강사로 생활비를 벌다가 가수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렸다. ‘댄싱퀸’은 405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에는 실제 가요계 톱스타인 엄정화의 노련미가 그대로 묻어났다. 촌스러운 아주머니와 무대 위 화려한 디바 사이를 안정적으로 오가며 이질감 없는 장면을 만들었다. ‘댄싱퀸’은 엄정화가 2010년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활동이 주춤하던 시기 복귀작으로 택해 더욱 시선을 끌었다. 그는 제4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며 “‘댄싱퀸’을 촬영하는 동안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면서 겪은 일에 대해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