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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지나간 자리… 동서양 문제적 두 학자의 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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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지나간 자리… 동서양 문제적 두 학자의 필담

입력
2016.05.2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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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자오팅양ㆍ레지 드브레 지음ㆍ송인재 옮김

메디치 발행ㆍ272쪽ㆍ1만4,500원

제목에 속지 말자. 동명의 일본 소설처럼 사랑의 알싸함을 그리고 있는 것도, 혹은 한갓진 동서양의 작가들이 주고 받은 덕담도 아니다. 오히려 부제로 달린 ‘혁명의 딜레마, 고객이 된 시민, 지식인의 브랜드화’라는 문구가 책의 성격을 더욱 적확하게 반영한다. 새 책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는 중국 철학계의 트러블메이커로 불리는 자오팅양과, 프랑스의 노혁명가 레지 드브레가 나눈 치열한 대담의 산물이다.

2011년 5월, 프랑스 트레이에서 열린 제 1차 프랑스-중국 문화 원탁회의를 주재한 서양의 좌파 노학자는 세상을 뒤엎는 혁명과 급진적 이상이 초래할 비이성적 후유증에 대해 성토하는 중국의 학자에게 큰 인상을 받는다. 회의가 끝난 뒤 드브레는 자오팅양에게 편지로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볼 것을 제안한다.

청년 시절 체 게바라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직접 참여한 드브레의 이력답게, 두 학자의 첫 편지는 자연히 ‘혁명’에 관한 사유로 출발한다. 드브레가 “혁명의 상상임신은 끝났다”라고 현대 정치에 대한 논평을 하면 자오팅양은 “혁명은 필요에 따르지 않고 욕망과 몽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면서 이상에 이끌린 혁명의 비이성성과 폭력성을 경계한다.

두 사람의 주제는 뒤이어 혁명의 산물로 탄생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드브레는 “민주주의가 혁명을 대체했다”고 역설하면서도 근대 국가의 핵심적 정치 이념으로 소환된 민주주의가 벌써 위기에 처한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드러낸다. 드브레가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인 인민의 권력은 귀신에 홀린 헛소리로 변했다.”고 개탄하자 자오팅양은 이에 대해 “민주주의는 공공 선택을 이루는 기술적 수단의 하나일 뿐 가치가 아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학자 모두 오늘날에 이르러 혁명과 민주주의보다 더욱 우선이 된 가치와 이념은 ‘자본주의’라는 부정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두 학자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금융자본, 미디어라는 새로운 권력이 혁명이 지나간 자리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는 것에 위기감을 드러내며 혁명 이후 도래할 새로운 앞날에 대해 조심스럽게 진단을 내린다.

책에는 각각 여섯 번씩 총 열 두 번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있다. 두 사상가는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동서양의 환경에서 완고한 선입견 대신 각자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존중을 배석시켜 멋진 대화를 이루어낸다. 때로는 거침없이 묻고 성실히 답하며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칭하던 두 학자가 말미에 이르러 서로를 ‘친애하는 벗’이자 ‘형제’로 칭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한판 승부 끝에 서로에게 존중을 표하는 멋진 경기를 본 후련함마저 느껴진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이 민주주의의 숭고함을 훼손하고 혁명의 의미를 희석시킨 5월. 합창인가 제창인가를 두고 설왕설래만 반복하기 전에 희생 끝에 탄생한 민주주의와 제대로 된 대화를 배우고 싶다면 꼭 읽어볼 책이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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