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준 갓 넘겼던 카카오
벤처 투자 스타트업 등 기대감
셀트리온은 복제약 개발 날개
“일면식 없는 6촌까지 캐물어”
피로 호소하던 하림도 짐 덜어
일감 몰아주기 기준은 5조 유지
전경련 “규제와화 의미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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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되고 나니 친가, 외가쪽으로 6촌, 처가 쪽으로 4촌까지 규제를 하더라. 요즘 외가쪽으로 6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이런 걸 규제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 지 궁금하다.”
지난해 팬오션(옛 STX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자산 규모가 5조원이 넘어 지난 4월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 한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계열사의 경우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이 30% 이상인 회사와 거래할 때 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관련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특수관계인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불만이었다. 공정거래법은 친족의 경우 6촌 이내,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은 4촌 이내까지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 매년 공정거래위원회에 특수관계인에 해당되는 사람을 모두 파악해 보고해야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영자나 최대주주의 경우 일면식도 없는 친인척의 인적 사항까지 특수관계인이란 이유로 보고해야 한다”며 “자칫 가족간 불화로 서로 등진 경우에도 빠짐없이 주민번호 등을 파악해야 해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 지정 기준이 10조원으로 상향 조정되며 이런 번거로움은 털어버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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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9일 확정 발표한 ‘대기업 집단 지정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혜택을 받게 된 또 다른 기업은 카카오다. 카카오는 이번 조치로 신속한 의사 결정과 계열사에 대한 외부 투자 유치가 가능해졌다. 올해 초 음악 콘텐츠 기업 ‘로엔’을 인수하면서 자산 총액이 5조1,000억원으로 늘어나 대기업 집단에 속하게 된 카카오는 그 동안 작은 아이디어가 나와도 이를 추진할 경우 규제 대상에 해당되는지,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지 확인하느라 실제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잦았다. 또 비상장 계열사와 일정 금액(50억원 또는 회사의 자본금과 자본총계 중 큰 금액의 5%) 이상 거래할 때는 이사회의 사전 의결을 거치고 공시해야 하는 의무도 부과됐다.
특히 카카오 계열사인 게임, 모바일 서비스 신생 혁신 기업(스타트업)들은 대기업 집단으로 묶이면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지 못했다. 국가 발주 소프트웨어, 이러닝, 지능형 로봇 등 정보기술(IT) 관련 업종 진출이 제한되는 등 불이익도 받았다.
카카오 관계자는 “정부와 공정위의 신속한 추진으로 대기업 지정에서 해제된 것을 환영한다”며 “카카오 관계사 대부분이 중소기업 또는 IT 스타트업인데 이번 결정이 사업 운영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지정 해제로 신규 모바일 사업, 스타트업 제휴와 인수합병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체 개발한 생물의약품 복제약(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미국과 유럽 시장을 뚫으며 성장한 덕에 국내 제약기업으로 처음 대기업에 지정됐던 셀트리온도 대기업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셀트리온과 계열사 자산 총액은 5조9,000억원이다.
셀트리온이 가장 반기는 부분은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비율이다. 중소기업에 해당돼 8%의 공제율을 적용받다가 대기업 지정 후 3%로 줄었는데, 다시 기존 중소기업 수준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램시마 후속 제품 등의 연구개발에 비용이 많이 지출되고 있어 세액공제 혜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혜택이 지속되면 램시마 후속 제품의 해외 진출과 국내 생산시설 증설 등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은 다만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유지되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셀트리온은 서정진 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46.47%)인 셀트리온헬스케어에 램시마 판매를 전량 맡기고 있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도 “대기업 집단 기준 완화는 진일보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다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공시의무 규제’를 현행 5조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과 대기업집단 지정 대상에서 공기업 집단만을 제외하기로 한 것은 이번 규제 완화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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