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대에 소리쳤지만 무시”
목격자ㆍ유족들 탄식ㆍ분통
현장 도착 30~40분 지나서야
인명피해 컸던 2층 사우나 진입
2층 비상구 적재물로 사실상 폐쇄
스프링클러 밸브 잠겨 작동 안해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참사는 ‘골든 타임’을 놓친 소방당국의 늑장대처, 건물 안전관리 부실이 원인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화재 신고를 접수한 소방당국은 7분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20명의 희생자가 난 2층 사우나에 진입한 것은 그로부터 30~40분이 지난 뒤였다. 유족과 목격자들은 “출동 직후 2층 사우나 유리만이라도 빨리 깼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조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부 유족은 “헬스장에 갇힌 가족과 1시간이나 통화했다”, “숨진 어머니는 바지와 겉옷을 입고 있었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결국 살아온 사람은 없었다”며 당국의 늑장 구조를 성토했다. 사망자 장모씨의 아들 김원현(37)씨는 “함께 운동하러 간 아버지가 어머니가 사우나에 있다며 소방대에게 통유리를 깨 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목격자들 사이에서는 “구조용 굴절차가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소방당국은 “기계 고장이 아니라 사고 현장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굴절차를 설치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소방 당국의 굴절차는 1명만 구한 반면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민간업체의 고소(高所)작업차량은 고층으로 대피한 5명 가운데 3명을 구조했다.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관리 부실은 참변의 주요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22일 소방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화재 당시 건물 1층 로비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설비는 알람 밸브가 폐쇄된 상태였다. 이 바람에 건물 9개층에 설치된 356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20명의 희생자를 낸 2층 여자 사우나의 안전 관리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자동 출입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실내에 있는 비상구는 적재물이 쌓여 사실상 폐쇄 상태였다. 대형 인명피해를 낸 원인이다. 이 사우나에 자주 간다는 주민은 “출입문 버튼이 작아 정확히 누르기가 쉽지 않다. 연기가 가득한 상황에서 버튼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2층 진입이 늦은 것에 대해 “현장에 도착하니 1층 주차장 차량들에 불이 붙었고 주변 액화석유가스(LPG) 폭발 위험도 커 진입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이어 “2층 방화문 안쪽에 유리로 된 슬라이딩 도어가 있는데, 그 안쪽에서 사망자들이 많이 발견됐다”며 “이들이 1층에서 올라온 연기를 피해 빠져나가려다가 문을 열지 못해 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화재 원인 규명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제천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차린 충북경찰청은 이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등과 합동 현장감식에 나섰다. 감식에는 전기안전공사, 가스안전공사 전문가들도 참여했다.
경찰은 사고 건물 1층 필로티 부분에서 불이 순식간에 커지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두 곳에서 확보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화재가 주차장 천장 배전 공사 도중 불꽃이 튀어 스티로폼에 불이 나고, 주차장 차량으로 옮겨 붙은 뒤 위층으로 급속히 번진 것으로 보고 있다.
건물주와 관리인 등을 상대로 건물 용도가 불법 변경됐는지도 경찰은 조사할 예정이다. 헬스장으로 알려진 7층은 그간 커피숍으로 사용하다 6개월 전부터 방치됐고, 식당으로 알려진 8층은 수개월 전까지 원룸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6시30분 현재 29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제천=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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