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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뷰티 인사이드(Beauty Inside)

입력
2017.06.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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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지팡이 짚고 절뚝거리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해? 다른 나라 정상들 앞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우습게 보이겠어?” 때는 1997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IMF 직후였다. TV에 비친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보고 외할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그런 반응은 평범한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양 자체에 민감하다. 외모가 존중심을 유발할 것이라고 믿는다. 해외 유학이 드물던 시절, 어쩌다 외국의 사립학교로 전학하는 친구들은 예외 없이 비싼 옷을 잔뜩 쇼핑해서 나가곤 했다. 빈부차와 상관없이 옷차림이 헐거운 서양애들 눈앞에서 마치 비싼 브랜드 옷이 얕보이지 않는 부적이라도 되는 듯이. 적극적인 사회성과 커뮤니케이션의 똑똑함이 매우 중요한 서양 사회에서 한국 아이들의 그런 노력이 그다지 효과적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예전, 인정(recognition)받는 방식과 관련한 한국인의 우물 안 개구리 식의 관념에는 지위고하의 차이가 없었던 듯하다. 어렸을 적 행정부 요직을 지낸 분들이 외국 사절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영어라는 핸디캡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사석에선 지나치게 저자세였고, 공식석상에서의 연설은 진부했다. 흔한 연설의 레퍼토리는, 한때 세계에서 제일 못살던 나라가 이젠 GDP가 얼마이고, 수출이 몇 위이고, 어떤 산업을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자화자찬이었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세상에 잘난 척하는 졸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은 어떤 사람들에게 이끌리고 존경심을 갖게 될까? 세상을 넓게 바라보면, 적어도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명예가 높기만 한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은, 분명한 가치 지향을 지닌 채 타자에게 진심으로 헌신하는 사람에게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런 공감의 코드는 국제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인간이든 그저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을 테지만.

20대 시절,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를 만났다. 그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져봤다. 선생님은 ‘민중’에 대해 너무 나이브한 인간관을 갖고 있는 건 아니냐고. 그들도 기회주의적이고, 약하기 때문에 더 약한 사람을 괴롭혀 온 사람들 아니냐고.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은 대충 이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비록 인간의 그런 모습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개개인은 보다 나은 사회상을 위해 헌신하며 자기만의 예술을 승화해 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때 난 속으로 다시 물었다. ‘그 자기만의 예술은 진심으로 남을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심리적으로 자신을 위안하기 위한 것일까요’.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요즈음, 난 이젠 그렇게까지 질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실제 본질은 그 상이한 동기들의 어느 중간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런 복합성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어떤 가치를 위해 계속 헌신할 수 있는 모습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닐까. 새로운 이들이 공직의 물망에 오르고, 비토하는 세력의 목소리도 높다. 정치적 반대에 맞서 백 수십 개의 구호단체가 어느 장관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는 기사를 읽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분인들 어찌 완벽한 사람이겠는가. 그런데 왠지 마음이 깊이 아리다. ‘그래도 참, 잘 사셨구나…아름답다’. 부, 명예, 권력은 능력 있는 사람이 노력하거나 운이 좋으면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 대상들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삶과 내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꺼이 그와 함께 서는 존재론적 사건은 그런 대상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더 많은 아름다움이, 이 사회와 인류를 위해 추구될 수 있었으면 싶다.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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