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 마침내 열렸다. ‘호스피스ㆍ완화의료의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연명의료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통과돼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18년부터 시행된다.
법안은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를 엄격히 규정했다. 회생가능성이 없고, 치료 해도 상태가 계속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대상이다. 담당의사가 이런 환자의 뜻을 문서로 작성한 ‘사전연명의료계획서’나 환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뒤 의사 확인을 받은 ‘사전의료의향서’가 있어야 한다. 이 기록이 없으면 가족 2명 이상이 동일한 진술을 하고, 이를 의사 2명이 확인해도 환자 의사로 간주하도록 했다. 만약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의식불명에 빠지는 등 환자의 뜻을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족 전원의 합의로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치료효과는 없으면서 임종만 늦추는 의료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법적 근거가 없어 연명의료를 중단할 경우 의사는 살인방조죄, 가족은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환자나 가족이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연명의료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은 가족대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환자 또한 생명을 기계장치에 의존함으로써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빼앗겼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90% 가까이가 연명의료 중단에 찬성하고 있는데도 매년 5만여 명이 연명의료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세계 죽음의 질’ 지수에서도 한국은 법령 미비 탓에 완화의료 비율은 33위에 불과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 못지 않게 강조되는 게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삶의 질만 추구했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지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외국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미국은 1989년 41개 주가 사전의료의향서 관련법을 통과시켰고, 대만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도 환자 자기결정법을 시행하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법안 통과가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죽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한층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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