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3 총선 이후 여기저기서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패자는 분명한데 뚜렷한 승자는 찾기 힘든 절묘한 선거결과에 여야 정치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유권자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언론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사과의 글과 말을 실어야 했다.
대선이나 광역단체장 선거와 달리 총선은 선거구가 잘게 쪼개져 있서 각 선거구의 여론 흐름을 파악하기 힘든데다 이번 20대 총선처럼 경합지역이 많으면 전체 판세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선거 일주일전까지 언론이 집중 보도한 지역구별 지지도 조사는 최종 선거결과와 너무 달라 과연 제대로 된 조사였는가 하는 의문이 적지 않다. 그 이유를 캐묻기 위해 여론조사기관 메트릭스의 조일상(47) 대표를 만났다. 메트릭스는 이번 총선에서 정당 경선 여론조사에만 참여했고, 언론사와 지지도 조사는 하지 않았다.
_이번 총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결과의 오류가 너무 두드러졌다. 선거 일주일전까지 10%포인트 이상 앞선다는 후보가 선거결과 낙선한 경우도 한 두 곳이 아니다. 문제가 무엇인가.
“우선 여론조사는 출구조사와 달리 투표가 있기 한참 전에 투표를 하지 않을 사람까지 포함해 전체적 여론을 파악하는 조사여서 엄격한 의미의 선거예측조사보다 부정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번 여론조사가 전반적 여론은 제대로 파악했느냐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총선 여론조사가 부정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화조사의 문제점들은 표본틀의 문제, 응답자 선정의 문제, 조사환경의 문제 등 복잡다단하다. 이는 여론조사회사들이 책임지고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이용해 개인적 이득을 보고, 결국 여론조사를 믿지 못할 도구로 만든 이들의 문제도 적지 않다. 첫번째로 선거기간에만 주로 등장하는 ‘떴다방 식’ 여론조사기관들과 품질 낮은 자동응답방식(ARS) 조사로 결과를 교란시키는 무책임한 조사관행의 책임이 크다.”
_부정확한 여론조사기관은 다음 선거에서 조사 의뢰를 받지 못할 것이고, 그런 방법으로 문제 있는 조사회사는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는 여론조사 기관이 언론 공표 48시간 전에 조사지역, 내용, 대상, 가중치 방법 등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 그걸 어길 경우 경고 등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이를 가장 많이 위반한 기관이 바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언론과 공동조사를 진행한 회사다. 이 회사는 심각한 규정 위반으로 과태료 이상의 무거운 제재를 받은 것도 압도적 1위이다. 예측도 물론 엉터리였다. 그 회사의 조사결과대로라면 새누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엔 신뢰도나 매출 등의 측면에서 검증된 40여개 여론조사회사들로 구성된 한국조사협회가 있다. 협회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조사에서 ARS의 사용을 금하고 이를 어기면 퇴출한다’는 내부규약을 갖추고 있다. ARS 조사는 상대방의 음성 등을 알 수 없어 선거 조사에 필수적인 연령, 성별 등 응답자의 인구특성을 오로지 응답자가 입력하는 대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어린 아이가 제멋대로 응답해도 이를 걸러낼 수 없는 조사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응답률도 낮다. 특히 20, 30대의 응답 비율이 유권자 인구비율과 크게 다르다. 하지만 조사비용은 전화면접 여론조사에 비해 10~20%면 된다. 문제가 된 여론조사회사는 주로 ARS를 이용해 언론사에게 낮은 가격으로 조사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몇몇 언론사들이 그런 부정확한 조사를 공동조사라는 이름으로 보도했다. 이번 총선에서 공정심의위에 등록된 여론조사 건수가 4월 17일 기준 1,407건이나 됐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조사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회사들이 난립해서 여론조사를 점점 더 엉터리로 만들고 있다. 문제의 여론조사회사 대표가 얼마 전까지 공정심의위원이었다는 건 한편의 블랙코메디를 보는 듯하다.”
_선거 예측보도의 정확성은 언론사의 신뢰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정도 비용 차이 때문에 엉터리 조사결과를 보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마를 중계하듯 매일매일 여론조사 변화 추이를 공개하고 거기에 장황한 해설을 덧붙이는 일부 언론의 관행이 이런 조사를 부추겼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과정에서 정치인 한 명의 돌출 발언이 나오면 당장 다음날 문제 발언이 지지율 변화로 나타났다는 식의 보도가 얼마나 많았나.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일매일 정치기사를 꼼꼼히 읽고 어떤 정치인이 한마디 하면 지지정당과 후보를 바꾸는‘정치전문가’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라고 할 수 없는 오차범위내의 변화일 때가 적지 않다. ARS 결과를 보도하고 과장해석을 일삼는 언론기관들 역시 여론조사를 이용해 이득을 보고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_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은.
“미국에서도 주로 집전화를 통해 여론조사를 하지만 결과가 우리나라보다 정확하다. 무엇보다 응답률이 높고, 전화를 걸어 집안 구성원 중 인구특성을 파악한 후 해당 구성원이 집에 있는 시간을 물어 재차 전화하는 방식으로 인구특성도 제대로 반영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조사비용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응답자 한 명당 6만원 정도다. 이처럼 조사비용이 넉넉하니까, 전화조사를 할 경우 먼저 계좌번호를 물어본 후 “응답하면 10달러를 계좌로 보내겠다”고 제안해 보다 성실한 응답을 이끌어낸다. 반면 우리나라 집전화 여론조사는 번호만으로 응답자의 거주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응답자의 거주지 파악이 중요한 총선 지지도 조사가 어려운 이유다. 정확성을 높이려면 예산을 늘리고 조사일정도 더 늘리고, 휴대전화 안심번호도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_정당 내부의 여론조사는 휴대전화 안심번호 방식으로 진행해 공개된 여론조사보다 비교적 정확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행 선거법상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는 정당에만 허용되고 있다. 안심번호란 무선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를 하되, 응답자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통신사가 휴대전화 사용자의 이름과 실제 전화번호는 알려주지 않고 일시적인 가상번호를 부여해 조사기관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조사 기간이 지나면 그 번호는 다시 사용할 수 없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응답자의 개인정보가 보호되고, 전체 응답률도 높아지고, 집전화 조사의 한계점이 상당한 수준으로 해소된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불안감이 커 일반 여론조사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_이렇게 문제가 많은 여론조사를 우리 정치권은 후보 경선 등에서 지나치게 높은 비중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치권에서 여론조사를 단순히 여론을 파악하는 수준 이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계기는 2002년 ‘노무현 정몽준 대선 후보 단일화’ 때이다. 당시 ‘통계적 오차허용범위를 무시하고 조사결과 0.1%포인트 이상 높은 쪽이 이긴 것’으로 합의했으니 사실상 복불복으로 대선 후보를 결정한 셈이다. 이후 여론조사는 경선에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한다. 이런 방식은 사실상 지명도 높은 현역 의원들이 유리할 수 밖에 없으며, 기성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된 점이 적지 않다. 더 심각한 경우는 유선전화 여론조사의 허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선거구 유선전화를 몇 백 회선씩 대량 신청해 미리 착신 전환한 지지자들 휴대전화로 연결해 특정 후보에 유리한 결과 만들어 낸다. 정당에서 후보를 선택할 때 여론조사를 통해 파악한 지지도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결정적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정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공정하게 여론조사를 원한다면 여론조사를 적절하게 이용해야 하고 그 품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해야 한다. 자기가 유리할 때만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정치권도 여론조사를 믿지 못할 도구로 만든 책임자 중 하나다.”
_끝으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화제가 된 ‘교차투표’는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감지됐나.
“선거 1주일 전 갤럽조사를 보면 국민의당 정당 지지율이 14% 정도였다. 반면 지역구 후보로 국민의당 후보를 뽑겠다는 비율은 11% 정도였고 비례대표로 국민의당을 찍겠다는 비율은 17%였다. 정당지지율은 14%인데 지역구 후보 지지율은 11%로 그보다 낮고 비례대표 지지율은 17%로 그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일주일 전에 교차투표를 결정한 사람이 많았다는 신호다. 거기에 투표 직전에 부동층들이 가세하면서 선거판이 요동치기 시작한 거다. 박빙 지역에서는 2, 3%포인트만 오르고 내려도 당락이 바뀌니 유권자의 사표방지 심리가 후보단일화 효과를 대체하는 효과가 발생한 거다. 그리고 국민의당 지지자들이 전통적인 야당표라고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국민의당 지지자 중에는 지역에서 더민주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들이 13%, 새누리당 후보는 10% 정도였다. 국민의당의 이념적 지지 기반은 오른쪽 새누리와 왼쪽 더민주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정리=고경석기자
조일상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
▦KAIST 경영대학원 졸업
▦현/ 메트릭스 대표이사
한국조사협회 부회장,
학술국제위원회 위원장
한국소비자광고심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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