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개개인의 특성 무시… 두루뭉술했던 '평균의학' 반성
발생 원인ㆍ증상ㆍ유전 특질 등… 다양한 양상따라 치료 선택
한 명의 치료법 결정에도 다양한 전문의들 머리 맞대
좌장(대장항문외과 전문의)= 방사선, 항암, 수술 순으로 장단점을 설명해주세요.
영상의학과 전문의= 간암 병변이 2cm로 고주파치료에 적당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병변이 간 위쪽이라 초음파가 공기가 있는 폐에 쬐면 병변이 안 보일 수 있어요.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어요.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방사선도 가능은 합니다. 보통 4번 하는데, 치료율이 70%에서 90%로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어요. 통증이 없다는 장점은 있지만, 치료성적이 좀 더 나은 수술이나 고주파가 먼저 추천됩니다.
내과의= 이번이 두 번째 재발이라 암 덩어리 제거하고 나서 항암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대장암에 쓰이는 약들은 몇 가지인데 힘든 정도 등은 앞서 받았던 것들과 대동소이해요. 연세도 젊으셔서 큰 문제 없을 겁니다.
환자= 항암치료 꼭 해야 하는 건가요?
내과의= 반드시 하셔야 해요. 지금 드러난 게 이 정도이면 실제론 눈에 안 보이는 작은 암세포 씨알들이 주변에 파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두 번째 재발이라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요.
외과의= 이번에도 간의 우측 바깥 쪽인데, 복강경으로 근치적절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좌장= 확률적으로 보면 역시 수술은 다 떼버리니까 제일 깨끗하겠죠. 그 다음은 고주파, 방사선입니다. 항암치료는 혹시 안 보이는 암세포가 있을까 봐 하는 거예요. 나이도 젊으시니까 확률적으로 제일 높은 게 아무래도 제일 좋겠죠. 수술이 제일 좋지 않겠느냐는 게 저희 생각입니다. 개복이 아니고 복강경으로 할 수 있다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겁니다. 어떤 의견이세요?
환자= 수술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좌장= 환자 집이 병원에서 멀어요. 이 점 고려해서 수술 일정 잡아주세요.
지난 4일 오후 경희대병원 본관의 한 회의실. 이 병원 대장항문외과 이길연(48) 교수가 대장암 환자의 치료법을 논의하는 다학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환자는 40대 여성. 대장암이 아주 초기인데도 암세포가 간에 두 번째 전이된 흔치않은 케이스.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줘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질병치료에서 환자 개개인을 중심에 놓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병기 뿐 아니라 증상 상태, 유전적 특질 등 진단과 치료의 모든 과정을 환자 개인에 초점을 맞춰 최선의 치료법을 찾는다. 환자 개인에 딱 맞춘 치료이다 보니 치료율이 그만큼 올라가고 후유증 발생은 줄어 들 수밖에 없다.
정밀의학이 주목하는 대상은 개인 차이다. 같은 질병, 같은 병기의 환자들이더라도 발생 원인이나 증상 상태, 유전적 특질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암의 병기를 1,2,3,4기로 나누는데, 각각의 병기 사이에도 굉장히 다양한 양상이 존재한다. 정밀의학은 현재의 의학(의술)이 환자 개개인에 맞춘 게 아니라, 광범위한 대상들에 두루뭉술 꿰맞춘 ‘평균의 의학’이라는 반성에서 나왔다. 이 교수는 “현재의 의학은 대규모 환자 대상의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효과가 좋으냐 그렇지 않느냐를 근거 삼아 발전해온 ‘평균의 의학’이다”라면서 “그러나 환자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치료 효과가 안 좋은 사람, 효과가 좋은 사람, 문제가 생긴 사람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고 했다
정밀의학이 가장 먼저 적용된 분야 중 하나가 표적치료제다. 표적치료제는 환자 개인의 유전자 변이를 표적 삼아 암세포를 골라 죽인다. 정밀의학이 주목하는 개인 차이에 유전자 변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장암, 특히 직장암 치료에서도 정밀수술이 필요하다. 직장암의 경우 암세포의 위치에 따라 치료법이 수술, 방사선, 항암요법 등으로 다양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치료율, 후유증 발생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애초 내과에서 시작된 정밀의학이 외과의 정밀수술(precision surgery)로 영역을 확장 중인 셈이다.
정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치료 가이드라인은 두루뭉술하다. 예컨대 직장암에 대한 방사선치료 시 국내 의사들의 대부분이 따르고 있는 미국 가이드라인은 암이 직장간막을 침범했거나,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하게 돼 있다. 장점은 암의 크기를 줄여 병기를 낮추고 항문 보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 반면 암의 재발 가능성이 논란거리다. 불필요한 환자가 방사선치료를 받을 경우 성기능 등이 나빠져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따른다. 이런 이유로 영국에서는 직장간막의 침범 정도를 다시 4등분, 5mm까지는 방사선치료를 안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장암만 보더라도 정밀의학이 빛을 발한 사례는 많다. 결장암에서 시행하는 혈관 근위부 결찰술을 동반한 완전 결장간막 절제술(CME with CVL)이 그 중 하나. 지난해 국제학술지 란셋 온콜로지(Lancet oncology)에 따르면 결장간막을 손상시키지 않고 정밀한 박리를 할 경우 4년 생존율을 10%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기 암으로 흔히 불리는 4기 암의 경우에도 완치가 가능한 경우가 적지않다. 대장암이 간이나 폐에 전이된 경우 말기라고 생각해 치료를 포기하기 쉽상이지만, 고주파ㆍ항암ㆍ방사선 치료와 수술을 병행할 경우 많게는 환자의 30~40%가 완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교수는 “말기라도 다 똑같지 않다. 전이 암 진단을 받았더라도 포기하기에 이르다”고 했다.
로봇 등 첨단장비가 정밀수술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로봇은 시야 확보와 수술도구의 움직임 등이 좋아 정교한 수술을 돕는다. 이 교수는 “특히 남자 하부직장암에서 보다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돈이 좀 들더라도 로봇을 하라고 권한다”고 했다.
정밀의학은 담당 의사 한 사람의 힘만으론 어렵다. 다학제진료는 그래서 선보였다. 환자 한 명의 진단과 치료법 결정 과정에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종양혈액내과, 외과의 등 전공 분야가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 일종의 집단지성인 셈. 이 교수는 “다학제진료에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한다. 치료법 결정 시 환자와 가족의 의견을 들은 뒤 최종 결정한다”고 했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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