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문제없이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잠을 자다 돌아다니고, 잠이 오지 않는다고 불쑥 안방으로 들어오고 참 난감하네.” 최근 주부 김모씨는 초등학교 4학년 딸 때문에 고민이 많다. 11살이나 된 딸아이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도 모자라 가끔씩 몽유병 환자처럼 거실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면장애를 호소하거나, 잠자다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니는 일이 반복되면 심리ㆍ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12세 미만 어린이는 뇌가 성숙하지 못해 악몽을 꾸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은 심리ㆍ환경적으로 안정이 되면 증상이 자연적으로 사라지지만 증세가 심하면 ‘나이트 테러(Night terror)’가 발생할 수 있다.
나이트 테러는 수면장애 일환으로 주로 수면 초반(첫 2시간 이내)에 발생하는데 울거나, 소리를 지르고, 불안감을 호소한다. 김성화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나이트 테러 증상이 있을 때 아이들은 깨어있는 것 같지만 혼란스러운 상태”라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밤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직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파와 연결된 증상으로 가족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원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가 어릴 적 이런 증세가 있었다면 유전적으로 아이에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트 테러는 시간이 지나면 호전되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안심시켜 주고 아이가 좀 더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아이의 심리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가 부모가 심하게 다투는 것을 목격했거나, 전학, 학업성적 등으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임상에서 가장 흔한 사례가 동생이 생겼을 때”라면서 “평소 예민한 아이라면 급격한 심리ㆍ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수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화 교수는 “일시적 현상이라 해도 아이가 밤에 걸어 다니다가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아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2층 침대 사용을 자제하고, 아이 방 주변에 뾰족한 물건 등을 치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평소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수면장애가 발생하지 않는다. 김태원 교수는 “아이의 욕구표현에 적절하게 반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너무 어린 나이에 혼자 잠을 자게 하는 등 아이가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은주 교수는 “아이가 잠을 자지 않는다고 체벌을 하면 상태가 악화되기 때문에 아이를 안심시키고 심리ㆍ환경적 원인을 살펴야 한다”면서 “수면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고, 아이가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는 등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수면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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