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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그림ㆍ압인선 등 千화백 그림 맞다”…25년 위작 논란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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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그림ㆍ압인선 등 千화백 그림 맞다”…25년 위작 논란 마침표

입력
2016.12.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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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ㆍ3DㆍDNA 감정 등 총동원

비싼 석채 안료ㆍ두터운 덧칠 등

千화백 작품 특징 그대로 드러나

같은해 그림도 압인선 사용 확인

미인도 아래 밑그림 찾아내

76년작 ‘차녀 스케치’와 유사

“佛 감정팀 결론은 신빙성 낮다”

'미인도' 속 나비의 테두리에서 압인선 즉 날카로운 필기구로 그린 흔적이 발견됐다. 적외선을 통해 살펴본 입술 부위에선 다른 밑그림이 나타났다. '미인도'가 천경자 화백의 전형적인 제작방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증거들이다. 서울중앙지검 제공
'미인도' 속 나비의 테두리에서 압인선 즉 날카로운 필기구로 그린 흔적이 발견됐다. 적외선을 통해 살펴본 입술 부위에선 다른 밑그림이 나타났다. '미인도'가 천경자 화백의 전형적인 제작방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증거들이다. 서울중앙지검 제공

25년에 걸친 ‘미인도’ 위작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검찰은 다양한 감정방법을 총동원했다. 유명 해외 감정팀과 반대 결과가 나온 것은 의외였지만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소장이력 조사 등을 거쳐 ‘진품’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반복 덧칠, 다른 밑그림 등 진품 근거

검찰은 대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카이스트에 의뢰해 X선 적외선 투과광사진 3D촬영 디지털ㆍ컴퓨터영상분석 유전자정보(DNA)분석 등의 과학감정 방식을 모두 활용했다.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13점을 비교ㆍ분석했고, 천 화백의 작품을 위조했다고 주장한 권춘식씨의 모작(진품을 본뜬 작품) 1점도 비교했다.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내린 것은 천 화백 고유의 제작방식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천 화백은 주로 D화랑의 화선지를 3장 덧댄 위에 흰색 안료(백반 아교 호분)를 바탕에 칠한 뒤 수차례 다른 색 안료로 두텁게 덧칠하고, 그 위에 희귀한 석채 안료를 바르는데 ‘미인도’가 이렇게 제작됐음이 확인됐다. 석채 안료 역시 천 화백이 일본에서 구입ㆍ사용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검찰은 “X선이나 적외선, 투과광 사진 판독 결과 미인도는 수없이 수정과 덧칠을 반복해 밀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며 “천 화백의 다른 진품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천 화백이 그림에 압인선 즉 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을 남긴 사실은 이번 수사를 통해 처음 밝혀졌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압인선은 ‘미인도’는 물론, 같은 해 제작된 ‘여인’ ‘후원’에서도 발견돼 역시 진품이라는 근거가 됐다.

‘미인도’ 아래에 숨겨진 밑그림의 존재도 드러났다. ‘미인도’의 그림 아래에는 완성된 그림과는 다른 밑그림이 존재했다. 특히 머리카락 밑에는 파마를 한 머리 모양과, 완성본에는 안 보이는 꽃그림이 숨어 있었다. 다른 밑그림의 존재는 수차례 덧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천 화백의 기법 때문인데, 68년작 ‘청춘의 문’ 등에서도 다른 밑그림이 발견됐다. 반면, 권씨가 모작한 ‘막은 내리고’의 적외선 사진에는 이 같은 밑그림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밑그림을 비교해 본 결과 검찰은 ‘미인도’가 올해 처음 공개된 천 화백의 76년작 ‘차녀 스케치’와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차녀 스케치’를 바탕으로 77년작 ‘미인도’와 81년작 ‘장미와 여인’이 제작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의 안목감정에서도 진품 의견이 우세했다. 감정위원 9명 중 소수가 “진품에 비해 명암대조(밝기)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감정의견을 냈지만 대부분 진품이라고 판정했다.

프랑스 감정 결과 신빙성에 의문

하지만 검찰의 ‘진품’ 결론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밑그림을 찾아내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프랑스 감정팀 뤼미에르테크놀로지와는 전혀 다른 감정 결과여서 의외였다. 고소인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감정을 맡은 뤼미에르테크놀로지는 특수 카메라로 ‘미인도’와 천 화백의 진품 9점을 스캔 촬영해 각 사진의 이미지가 비슷한 유형인지를 수치화해 비교 분석했다. 명암대조, 빛의 균형, 눈, 콧망울 등 9개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 수치화한 결과 ‘미인도’의 모든 항목이 다른 진품군과 거리가 멀다는 결론이 나왔다. 프랑스 감정팀은 “‘미인도’의 진품 가능성은 0.00002%”라는 수치분석 결과를 밝히며 ‘장미와 여인’의 위작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찰은 이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낮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뤼미에르테크놀로지가 대표적인 감정방법이라고 내세웠던 심층 단층분석방법이 ‘미인도’ 감정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분석방법은 그림을 1,650개의 단층으로 쪼개 그림이 그려지는 전체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인도’ 감정에서는 스캔촬영을 통한 수치분석만 제시됐다. 게다가 이 방식으로 천 화백의 다른 진품을 분석하자 “진품 확률이 4%대”라는 결과가 나와 신뢰하기 어려웠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또 뤼미에르테크놀로지가 주장하듯이 ‘미인도’가 ‘장미와 여인’의 위작일 가능성은 소장이력에 비춰 모순이라는 점도 배척 근거로 내세웠다.

이밖에 검찰은 수학 알고리즘을 활용한 컴퓨터 영상분석기법(웨이블릿 변환 분석)을 시도했지만 위작으로 볼 근거를 찾지 못했다. ‘미인도’에서 추출한 DNA 감정과 필적 감정에서도 유전물질 손상 등으로 ‘감정불가’로 판단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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