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악인지 모른다. 폭식만큼 위선도 추악하다. 미감을 탓할 순 없다. 광풍이 일방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왜 인간인가. 고통을 헤아리려 하기 때문. 그 맘이 없다면 그냥 악일 따름.
“자기를 서사화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아픔과 슬픔에 거리 둘 수 있도록 돕는다. (…) 그렇게 쓰인 자기 얘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공감과 환호를 받으면 상처에 새살이 돋아난다. 자신에게 공감하는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다 보면 공감능력이 생긴다. 과장된 자기연민과 과도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는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 힙합의 근본적 태도는 ‘보여주고 증명하라(Show and Prove)’다. (…) 말하자면 힙합은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자들, 혹은 애써 감추고 지우려는 이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론이었다. 자기 스스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내뱉는 것, 화날 때는 화난다고 외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형제, 자매, 친구도 그렇게 이야기를 내뱉도록 권하고 경청하는 것, 그렇게 서로의 존재의 증인이 되어주는 것이다. 최근 세월호 유족들에게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 이들, 유족들이 단식하는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폭식’하며 유족들을 조롱하는 이들이 있었다. (…) 유족들 앞에서 폭식으로 조롱하는 행동도 일종의 ‘보여주고 증명’하기일 수 있겠다. 공감능력이 결여됐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증명했다. 그러나 부박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형제, 자매, 친구들을 상처 입힐 뿐인 그런 증명은 사회를 더 나쁘게 만든다. 스스로의 성장도 가로 막는다. ‘쇼 미 더 머니’(케이블TV 채널 엠넷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기자 주)를 보고 흥이 나서 라임 맞춰 랩 가사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최근 쓴 라임노트의 일부분을 공유해본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이들에게 바치는 랩이다. “지금 네 태도는 패기나 용기 아냐/ 그냥 덜 컸을 뿐, 어린 아이마냥// 어른 되려면 정리해 네 스스로의 아픔/ 그럼 알게 될 거야 다른 이의 슬픔// (…)”
-쇼 미 더 공감(한국일보 ‘2030 세상보기’ㆍ최서윤 ‘(격)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 전문 보기
“추석 연휴 동안 ‘광화문’이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연휴 동안 홍가혜씨는 광화문 세월호 단식 농성장에서 야당 정치인들과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월호 구조 관련 거짓 언론 인터뷰를 했다가 구속됐던 홍씨는 ‘상습 허언증 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여성이다. 한 진보 성향 작가는 ‘광화문광장에 나타난 그 인물을 보니 모든 노력이 덧없이 느껴진다’고 썼다. 같은 날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 회원들은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나와 피자와 치킨을 먹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폭식 투쟁? 이건 자폭 투쟁”이라고 허탈해 했다. ‘관심병 환자’라고 비판받는 이들의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관심도 받아본 적 없는 한 무명 배우의 전락(轉落)과 대비하기 위해서다. (…) 이번 사건에서도 그는 주역이 아니었다. 김영오씨에 대해 “단식하다 죽어라”며 막말을 한 뮤지컬 배우의 페이스북에 상대적으로 ‘소심한’ 댓글을 달았다. ‘영양제 맞으며 황제 단식 중이라니…. 그러니 40일이 가까워지도록 살 수 있지.’ (…) 정씨의 댓글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파장은 메가톤급이었다. 정씨 개인에 대한 욕설과 저주를 넘어 이 엑스트라급 배우가 출연한 ‘해무’를 보이콧하겠다는 협박이 SNS에 파도처럼 넘쳐났다. (…) 웃지 못할 해프닝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해무’를 지켜야 한다는 파도였다. 영화를 왜 배우의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느냐는 합리적 이유가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문성근은 세월호 동조 단식까지 한 ‘우리 편’인데 왜 ‘미꾸라지’ 하나 때문에 영화를 보이콧하느냐는 거였다. 결국 이 무명 배우는 ‘30년 배우의 꿈’을 내려놓겠다는 장문의 사과문을 써야 했다. (…) 하지만 이제 ‘광화문’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합리적 국민의 소망과 달리 위험한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를 떨치기 힘들다. 쩨쩨한 댓글이나 올리는 무명 배우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가. 다음 과녁은 평범하고 소심한 당신일 수도 있다.”
-‘광화문’이 삼킨 無名 배우(조선일보 ‘어수웅의 트렌드 돋보기’ㆍ문화부 차장) ☞ 전문 보기
분열하는 건 소시민뿐이다. 강자 간 유대는 견고하다. 특권이 그들을 묶는다. 권리는 보편적인 게 아니다. 방탄조끼는 은밀히 지급된다. 전횡되는 권력에 이름 따위가 보일 리 없다.
“이른바 철도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국회의원 223명 가운데 73명만 찬성해서 부결됐다. 무기명 투표였다. (…)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개인 자격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를 대표하여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극히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국회에서 모든 사안은 기명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유권자는 해당 법률안에 대해 자신이 뽑아준 국회의원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당연히 알아야 한다. 정치인의 이념적, 정치적, 정책적 신념을 알아야 투표를 제대로 할 수 있다. 해임건의안이나 체포동의안은 정치적 신념과 무관한가? 아니다. (…) 국회의원이라면 정치적 신념과 그에 따른 행동을 유권자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국회의원이 외압에 시달리지 않고 소신껏 투표할 수 있도록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무기명 투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 무기명 투표로 하면 권력자의 눈치를 덜 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눈치도 덜 보게 된다. 국회의원에 대한 유권자의 통제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여야 의원들이 카메라 앞에서는 치열하게 싸우다가 휴식 시간에는 아주 친해진다고 한다. 체포동의안을 기명 투표로 하면 이런 친목에는 방해가 될 것 같다. 국회의원 간 친목 도모는 그들끼리 똘똘 뭉쳐서 특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유권자에게는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 모두가 모여 뇌물을 받지 말자고 굳게 다짐한다고 해서 뇌물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뇌물죄의 형량을 대폭 늘리고 거액 뇌물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면 뇌물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마음을 바꿔 먹으라고 아무리 설교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면 제도가 바뀌면 행동이 금방 바뀌기도 한다. 만약 기명 투표였다면 이번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까?”
-국회의 무기명 투표부터 없애자(한겨레 ‘왜냐면’ㆍ이덕하 번역가) ☞ 전문 보기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복면을 쓴다. (…)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보다 훨씬 대담하고 공격적이 되는 까닭이다. (…) 익명성은 평범한 사람을 쉽게 잔혹한 살인마로 만들기도 한다. 영국 물을 먹고 자란 청년이 서슴없이 사람의 목을 딴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다른 게 아니다. 악까지는 아니더라도 익명성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수치를 잊고 문란해진다. 점잖던 사람들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길에서 거리낌 없이 쉬할 수 있는 이유다. (…) 이 나라 선량들이 딱 그렇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절대 배지’만 달면 사리(私利)의 화신이 되고 당략(黨略)의 좀비가 된다. 그들은 낡았지만 위력적인 방탄복을 입었다. 유권자 무서워 말 못 꺼내던 동료 구하기를 무기명 투표로 성공시킨다. (…) 넉 달 넘도록 법안처리 한 건 못하면서도 특권 지키기에는 일사불란 흐트러짐이 없다. (…) 이번 사안이 어떤 건가. 단순 비리가 아니라 철피아에 의한 철도 부품 납품 비리다.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필연적으로 초래할 안전불감증이 바닥에 깔렸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국회가 대한민국의 안전을 팽개친 ‘국피아’ 대열에 스스로 동참한 게 아니고 뭐냔 말이다. 국회의원은 예비군들과 다르다. 예비군들은 한 번 시원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의원들은 행정부를 종처럼 부리며 국정을 뒤흔들 힘을 가졌지 않나. 그런 힘을 사법부조차 무력화하는 데 쓴 것이다.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이 곧 국민에 대한 테러와 다름없는 이유다.”
-절대 배지의 테러리스트(9월 5일자 중앙일보 ‘분수대’ㆍ이훈범 국제부장)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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