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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ㆍ계좌이동 등 ‘절반의 성공’… 금융개혁 큰 그림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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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ㆍ계좌이동 등 ‘절반의 성공’… 금융개혁 큰 그림이 아쉽다

입력
2016.08.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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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 성장 불구 절반이 깡통계좌

간편송금, 공인인증서 장애물 여전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 진통도

“장기적 개혁방향 필요” 목소리

#. 어린이보험을 알아보던 직장인 A씨는 최근 보험상품 비교공시사이트인 ‘보험다모아’를 찾았다가 골탕을 먹었다. 사이트에서 연령과 보장내용 등 가입조건을 입력하고 산출한 보험료(2만9,000원)와 실제 가입을 위해 해당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재산출한 보험료(4만5,000원)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보험사에 문의하자 공시한 보험료는 가입조건에 따라 실제 보험료와 차이가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 A씨는 “일괄 조회와 비교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결국은 개인이 보험사마다 직접 가격을 문의해야 돼 여전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 미국에서 1년 연수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B씨는 지난 몇 달간 겪은 불편이 아직 씁쓸하다. 국내 은행 계좌에서 생활비를 이체해 쓰던 B씨는 기한이 만료된 공인인증서를 갱신하려다 결국 포기한 뒤, 아무런 송금거래도 하지 못했다. 공인인증서 발급ㆍ갱신엔 본인명의 휴대폰 인증이 거의 필수인데 외국 체류 증명 서류를 팩스로 보내고 가족을 통해 대신 갱신해야 하는 등 절차가 몹시 까다로웠다. B씨는 “공인인증서 사용의무가 폐지됐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은행거래마다 필수인데다 매년 갱신해야 하는 불편도 그대로다”며 불만을 전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3월 중순부터 추진해 온 ‘금융개혁’ 캠페인이 이달로 시행 500일을 넘어섰다. 오랜 기간 관행을 핑계로 굳어져 왔던 각종 규제를 재검토하고, 구시대적인 영업ㆍ감독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은 시도 자체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사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계좌이동제, 크라우드펀딩, 비대면 실명확인, 금융상품 비교공시사이트 등 예전엔 없던 다양한 제도들도 속속 시행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기엔 여전히 미흡한 점들이 많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당국이 눈에 보이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큰 틀의 금융 시스템 개선은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작년부터 추진한 70개 금융개혁 세부과제 가운데는 이미 어느 정도 시행 성적표가 드러나고 있는 ‘소비자 체감형’ 사업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서민층 재산 증식을 위해 올 3월 도입된 일명 ‘비과세 만능통장’ ISA다. 6월말 기준 가입계좌 수 236만여개에 가입금액도 2조4,000억원을 돌파할 만큼 외형은 제법 커졌다. 하지만 계좌잔고가 1만원 이하인 ‘깡통계좌’ 비중이 전체의 절반 이상(57.8%), 10만원 이하의 소액 계좌가 80%를 넘는다. 발생한 수익에 면세혜택을 준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초기 수익률(최근 3개월 평균 0%대)도 극히 저조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서민층의 경우 투자여력이 적고 그나마 있는 자산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 활용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금융사에 등록돼 있는 자동이체를 통합 관리하는 계좌이동서비스나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간편송금 및 결제 서비스도 당초 기대만큼의 열띤 호응은 얻고 있지 못하다. 여기엔 여전히 공인인증서라는 장애물이 남아 있는 탓이 크다. 자동이체통합관리서비스(페이인포)나 금융사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가입 단계에선 지금도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거래 시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규정이 지난해 폐지되긴 했지만 이를 대체할 안정적인 보안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며 “마땅한 대안이 없는 금융사 입장에선 최소한의 보안장치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종 비교공시사이트에도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은행은 최근 ISA 다모아에 자사 ISA 수익률을 부풀려 공시했다가 문제가 됐다. 또 사이트에 공시되는 수치(수익률, 보험료 등)와 실제 사이 간극도 크다. 예를 들어 펀드의 경우 가입시기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인데 사이트에는 평균 수익률만 공시돼 실제 소비자의 판단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창업 중소기업을 돕고자 도입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성과도 아직 미미하다. 올 1월 출시 이후 6개월간 64개 기업이 102억원을 지원받았지만 자금모집에 실패한 경우도 신청 기업의 절반 이상(52%)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 크라우드펀딩은 기부형이나 참여형이어서 성공률이 높았지만, 증권형은 차익실현을 노리는 투자상품”이라며 “창업 기업에 개인투자자가 굳이 리스크를 안고 투자할 유인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벤처기업 입장에서도 자금조달은 반갑지만 소액주주가 많아져 경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에 신청을 꺼린다.

금융당국이 ‘금융개혁의 핵심’이라며 잔뜩 공을 쏟고 있는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도 진통이 상당하다. 금융공기업에 이어 시중은행에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노사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와 시중은행은 수익성 창출을 위해 임금구조와 고용체계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도입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지만 “저성과자를 강제로 퇴출시키려는 의도”라는 금융노조의 거센 반발에 막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작 금융당국이 보여줘야 할 금융개혁의 큰 틀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헌 전 숭실대 교수는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 정책금융, 금융사 지배구조 등 근본적 금융구조는 건드리지 못하고 미시적인 분야만 개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인터넷전문은행이나 모바일 플랫폼 등 새로운 형태의 현장중심 개혁은 긍정적이지만 장기적 관점의 금융개혁 방향이 없는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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