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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는 이유

입력
2016.03.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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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씨. 문학과지성사 제공
소설가 한강씨. 문학과지성사 제공

일본에서 한국 문학은 1970~80년대 김지하 시집으로 출발해 1990년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이 주목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대로 판매되지 못하고 사라졌고, 류시화 시집 등이 팬시 상품처럼 판매됐다. 한국문학은 일본인이 모르는 샤머니즘을 말하고, 한국전쟁이나 분단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를 주제로 삼으니 일본인이 공감하기 어려워 아쉽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차라리 수업 시간에 이상의 ‘날개’를 일본어로 40분 정도 읽고 20분 정도 토론하면 재미있어 하곤 했다.

일본에서 지냈던 13년간 내가 사랑하는 한국문학은 늘 책방의 한쪽 구석에 꽂혀 있었다. 한류가 봇물 터지듯 터졌던 2000년대에 K팝 가수나 영화잡지는 서점 입구나 중앙에 놓였고, 영화나 드라마를 소설화한 책들이 제법 팔렸다. 최근 들어 시인 고은ㆍ문정희, 소설가 이승우ㆍ공지영ㆍ신경숙ㆍ김영하ㆍ한강ㆍ김애란 등의 한국문학이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연작소설 3부작으로 구성된 ‘채식주의자’는 세 명의 관찰자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포르토벨로북스 부편집자 카 브래들리는 ‘채식주의자’의 샘플 번역본만 보고도 “위험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파크가 튀었다. 한강의 텍스트가 그녀의 모국어에서도 컬트적 대중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대산문고 2015년 가을호)었다고 썼다. 그 예감대로 ‘채식주의자’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맨부커상 국제부문에 한국 소설로는 처음 최종 후보에 올랐다. 과연 어떤 매혹이 이국인들의 마음을 끌고 있을까.

꿈을 꿨어

‘채식주의자’에 영혜 남편인 ‘나’는 밤에 냉장고 앞에 서 있는 아내를 본다. 꿈에서 반복되는 ‘피웅덩이에 비친 얼굴’은 영혜의 고통을 재현한 몽상이다. 상처와 환상은 ‘상처=환상’으로 이어져 있다. 악몽을 반복시키는 트라우마의 얽힌 실타래는 조금씩 풀린다. 월남에서 베트콩 일곱을 죽이고 무공훈장을 받은 아버지에게 영혜는 여덟 살까지 종아리를 맞았다. 아홉살 때 개에게 다리를 물리자 아버지는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 다니며 죽였다. 참혹하게 죽은 흰둥이의 ‘핏물 고인 눈’은 영혜의 뇌리에서 악몽으로 반복된다.

바싹 마른 영혜에게 가족들이 권하는 육식은 비정상에 대한 폭력이었다. 아버지는 영혜의 뺨을 때리고 입을 벌려 고기를 쑤셔 넣는다. 폭력 앞에 영혜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자리에서 과도로 손목을 긋는 방법밖에 없었다. 미셸 푸코가 썼듯이, 비정상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되고, 규범은 영혜를 광녀(狂女)로 만든다. 폭력에 상처받은 영혜는 제 입으로 작은 동박새를 물어 뜯어 죽인다.

‘몽고반점’에서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아티스트 ‘나’는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야생의 나무’ 같은 영혜의 몸에 바디페인팅을 해서 비디오를 찍는다. 영혜와 성교한다. 저돌적인 ‘나’의 접근에 어둠 속에 덮어 두었던 영혜의 욕망도 해제된다. 성행위는 관능적이며 그 자체가 해방이지만, 모든 삶을 무너뜨리는 자해적 행위였다. 마침내 형부는 구속되고, 폭력과 섹스로 무차별하게 해체된 영혜는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 김인혜의 시각으로 서술된다. 정신병원에서 영혜는 식사는커녕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이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인혜는 “그러다가 죽어”라고 염려하지만 영혜는 “죽으면 안돼?”라고 태연하게 답한다. 소설에서 폭력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것은 ‘남성적 권력’(팔루스)으로 확대된다. 고깃덩어리 같은 남성적 폭력에 대항하는 것은 “둥근 가슴”이라는 모성(母性)이며, 식물되기라는 생성(生成)이다.

남성적 폭력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소설 ‘소년이 온다’는 완성된다. ‘채식주의자’가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면, ‘소년이 온다’는 압도적인 국가폭력에 맞서는 인간의 존엄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폭력은 한강 소설의 핵심 주제다.

슬픔 곁으로

‘채식주의자’는 요미우리ㆍ마이니치ㆍ교도통신 등 20여개 일본 언론이 서평으로 다뤘다. “여성은 후반에, 전신전령(全身全靈)을 기울여 하나의 나무가 되려고 한다. ‘성’(性)동일성장애라는 말은 들은 적은 있으나, ‘씨앗(種)’동일성장애라는 것도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이라든지 ‘당연하다’라고 하는 것에, 이 소설은 날카롭게 파고들어 온다. 폭우 속에 내던져진 듯한 강렬한 독후감이 남는다.”(아사히신문, 2011년 7월 24일자) 평론가 마쓰나가 미호 와세다대 교수는 문명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던 카프카를 살짝 언급하면서, 무엇이 과연 정상(正常)인가를 묻는다.

또한 “가장 날 매료한 것은 상식인으로 그려지는 영혜 언니도 남편이 불의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미쳤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대목이다”(요미우리신문, 2011년 7월 17일자)라고, 다른 일본인 작가는 영혜의 언니 인혜를 주목하고 있다.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61쪽)라고 할 때, 언니 인혜는 끝까지 곁에서 영혜를 돌본다. 인혜는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 없었을까”라며 가족들의 상흔을 홀로 앓는다.

자신의 입으로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피해자 서벌턴(하위주체)의 마음을 작가는 인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민중항쟁에서 죽어간 중음신(中陰身)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영혜를 버릴 수 없었다”(169쪽), 이것만이 야만에게서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곁으로 가는 인혜의 자세야말로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이 세계에 필요한 주제일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알려온 쿠온(CUON) 출판사 김승복 대표는 “한국 작가들이 자주 일본에 오고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일본 작가들과 대담하고 그것을 지면화하는 등 작가를 통해 작품도 읽게 하는 다양한 흐름을 만들어 보려 한다”며 “지난해 도쿄 서점거리인 진보초에 한국 전문 북카페를 오픈해 작가들 중심으로 주 2, 3회 정도 이벤트도 마련한다”라고 전했다.

한국문학은 현대인의 권태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극과 독재와 산업화 과정의 체험을 품고 갖고 있다. 마치 영화 ‘쉬리’와 드라마 ‘대장금’처럼, 하나의 물꼬가 트이면 세계인들에게 한국문학은 성큼 다가갈 것이다. 한글로 쓰는 작가들의 깊은 문제의식과 출판인들의 꾸준한 시도가 국경을 넘는 간절한 소통을 불러 올 것이다.

김응교 문학평론가ㆍ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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