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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패장'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의 취중진담

입력
2015.04.1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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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장’신치용(60) 삼성화재 감독에게 17일 낮술을 청했다. 지난 1일 V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끝낸 뒤 3일간 끙끙 앓았다는 신 감독은 이제 막 머리 속에 꽉 찼던 고민을 내려 놓았다. 1995년부터 삼성화재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참 오랜만에 졌다. 2005년부터 현대캐피탈에 두 시즌 연속 패한 이후로 내리 7시즌 연속 우승 반지를 수집했지만 지난 시즌 제자 김세진(40) OK저축은행 감독에게 무릎 꿇었다. “느낀 바가 많았다”는 신 감독은 한 잔의 술로 지난 7개월 동안 못다한 얘기를 털어냈다. 이하 일문일답.

프로배구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17일 오후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V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패배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4)
프로배구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17일 오후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V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패배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4)

-최근 위로주를 많이 마셨나.

=오늘 아침 사우나에 갔는데 어르신들의 배구 해설이 시작됐다. “그렇게 우승을 많이 했는데 한번은 져야 다른 사람들도 먹고 살지”라는 말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위로를 해준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다.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것이 가장 편하다.

-오랜만에 졌다. 감독으로서 올 시즌 전후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다.

=강연에 가서도 할 말이 많이 생겼다. 강단에 서서 ‘챔피언이었으면 여러분이 날 더 우러러 보겠지만, 나는 오히려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아졌다’고 얘기했다.

-챔프전 패배가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삼성화재도 빈틈 없이 준비했겠지만 OK저축은행이 정말 잘했던 것도 있는데.

=내가 우리 것을 다 보여준 뒤에 실패했으면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준우승한 것도 괜찮다. 하지만 결과 떠나서 ‘이 따위’ 시합 밖에 못한 것은 너무 상처로 남아있다. 아직도 그 경기를 생각하면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다.

-본격적으로 최태웅, 김세진 등 신치용의 제자들이 감독 자리에 올랐다. 한편으로 제자들은 신치용의 지도 방식에 이견이 있는 듯 하다.

=선수 시절 그들을 강하게 통제한 것에 대한 불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다. 지금도 매일 밤 10시30분이 되면 선수들의 핸드폰을 걷는다. 선수 통제가 아니라 선수 보호다. 다음날 훈련에서 부상 당하지 말고 충분히 쉬라는 의미다. 탄산 음료 먹지 마라, 간식은 고구마와 달걀만 먹어라? 그렇게 시키면 선수들이 날 싫어한다는 사실 알지만 그게 내 일이다.

-감독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는데,‘포스트 신치용’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나.

=스스로 내려가는 감독은 아무도 없다. 세월이 날 밀어낼 때까지 끝까지 할 것이다. 다음시즌도 반드시 이길 것이다. 다만 OK저축은행과 경기하면서 전투력이 안 생겼던 게 사실이다. 상대 감독에게 이기려고 악을 써야 하는데 김세진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제자와 싸운다는 게….

-OK저축은행이 삼성화재를 이긴 것에 대해 배구팬들은 OK저축은행에‘고맙다’라고 한다더라.

=삼성화재에 응어리 진 사람 많다. 나 때문에 서른 명 이상의 감독이 갈렸다. 선수 생활 하면서 우승 못하고 은퇴한 사람이 태반이다. 삼성화재에 대한 악감정이 큰 것 다 안다. 하지만 아무리 나를 욕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당연히 그들은 나를 욕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기 위해 정말 억세게 살았다.

-배구인으로서는 배구계의 세대교체에 찬성하는 입장인가.

=당연하다. ‘배구를 망하게 하는 1번은 신치용’이라는 말 듣는다. 많은 감독들이 우승을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나도 그 노력에 조금도 안 뒤지려고 정말 애를 쓴다.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노력하는 지 우리 마누라만 안다. 배구팬들이 몰라줘도 난 섭섭하지 않다. 평가는 나중에 받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욕을 많이 먹고 나면 지혜도 생긴다(웃음). 그렇다고 내가 도둑질을 했나. 열심히 한 죄, 우승한 죄 밖에 없다.

-김상우, 최태웅, 신진식, 김세진, 박철우 중 애제자는 누구인가.

=애제자는 없다. 그래도 꼽자면 신영철 감독을 꼽겠다. 한국전력 코치 시절부터 데리고 와서 평생을 함께한 정이 있다.

-신치용에게 ‘청출어람’은 지난 시즌과 다음 시즌의 키워드가 될 것 같다. 신치용에게 청출어람이란?

=그냥 좋은 경쟁상대라고 생각한다. 청출어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은 없다. 오늘 아침 목욕탕에서 “제자한테 지니까 좋으냐”는 말 들었는데 결코 좋지 않다.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제자 밀어주는 것 아니냐’라는 소리다. 난 정정당당하게 승부에만 신경 쓸 것이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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