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그들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다정하게 팔짱을 낀 두 사람은 “남녀 간의 사랑만 참사랑”이며 “동성애를 반대하고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랑이란 이름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혐오를 표현하는 모습에 말문이 탁 막혔다.
지난 주말 페이스북을 휩쓸고 간 젊은 남녀의 영상은 그러나 결국 지워졌다. 분명 애초 영상에는 ‘리얼 러브 메시지’라는 캠페인 제목도 있고, 이런 영상을 너도 나도 찍어 페이스북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공유하자는 문구도 달려 있었지만 어느 순간 싹 사라졌다. 영상이 엄청나게 공유되긴 했는데 애초 의도와는 달리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상을 올린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대거 공유하자 깜짝 놀라 삭제한 건 아닌가 생각된다.
태어날 때 흑인과 백인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성 정체성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 혐오자들은 동성애가 ‘교정이 가능한 질병’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 심지어 자기 자녀의 성 정체성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인한다.
특히 영상처럼 공개적으로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행복 추구권과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특정인이나 집단을 향해 가하는 폭력 행위다. 신체적 폭력이 가해지지 않았더라도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힌다. 서울시 성소수자 학생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58.5%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이는 일반 학생의 자살 시도율의 4~5배에 이른다. 학교에서의 따돌림이나 괴롭힘뿐 아니라 부모의 몰이해까지 더해지면 민감한 청소년기에 받는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한국에서 동성애 혐오를 공공연하게 표현하며 성소수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상당수 개신교 교회와 이들이 연합한 기독교 단체다. 이들은 설교와 기도를 통해, 메신저 문자를 통해, 복고풍 사진에나 등장할 것 같은 어설픈 공연이 들어간 집회를 통해 공공연하게 혐오 발언을 하고 확산시킨다.
한 기독교 단체는 지난 3월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피습 당하자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췄다. 여러 교회에서 일요일 예배 때마다 대통령과 동맹국(미국)을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듯, 한국 기독교의 숭미주의는 뿌리 깊다. 그러나 이런 미국 숭배도 동성애 혐오보다는 가치의 중요성이 덜한가 보다. 이달 9일 시작된 올해 퀴어문화축제에는 미국과 미스라엘 등 16개국 대사관이 참가했지만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이를 반대하는 시위에 2,000명이나 모여 북을 치고 춤을 추었다. 만약 나중에 미국에서 게이 주한 미 대사를 임명하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숭미주의를 후순위로 밀어낼 정도로 강렬한 반동성애 정서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지난해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한 기독교 단체가 낸 성명을 보면 “한국에서의 반동성애 정서는 전통적인 한국적 윤리관에 의한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에서도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은 문화를 이용한 ‘침략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적혀 있다. 동성애 반대의 뿌리가 ‘불지옥’이라는 성경의 글자 자체보다는 한국의 전통적인 동성애 혐오 정서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다른 말로 하면 예전부터 싫어했고 지금도 계속 싫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때문에 자신이 직접적으로 입는 피해는 없지만 싫으니까 이 사람들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독교 중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교황까지도 성소수자에 대해 전향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시대다. 참사랑은 자기들만의 것이라며 다른 방식의 사랑을 부인하는 영상과 혐오와 차별을 부르짖으며 북을 치고 춤을 추는 퍼포먼스는 사람들에게 공감보다 거부감을 일으킨다. 사랑과 관용이라는 종교의 기본 정신에서 지극히 먼 행위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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