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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 선물한 푸른 눈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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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 선물한 푸른 눈의 신부님

입력
2017.02.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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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간 제주민에 헌신한

아일랜드 출신 임피제 신부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후원

임종 앞둔 가난한 이웃 관심 호소

지난 18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후원 및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 기념식’에 참석한 임피제 신부. 60여년간 제주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온 그는 90세를 목전에 둔 노령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 병원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제주도 제공.
지난 18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후원 및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 기념식’에 참석한 임피제 신부. 60여년간 제주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온 그는 90세를 목전에 둔 노령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 병원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제주도 제공.

‘푸른 눈의 신부’라 불리는 임피제 신부(본명 패트릭 J. 맥그린치ㆍ89). 그는 1954년 청년 시절에 이역만리 떨어진 아일랜드에서 제주로 건너 와 지금까지 평생을 제주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왔다.

임 신부가 처음 제주에 도착할 당시 제주사람들은 한국 전쟁과 4ㆍ3사건 등으로 인해 극심한 가난과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목축업이 발달한 아일랜드 출신의 그는 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끼를 밴 어미 돼지 한 마리를 인천에서 구입해 제주 한림까지 가져왔고, 어미 돼지가 낳은 새끼 돼지들을 아이들에게 한 마리씩 나눠 줬다. 그리고 분양한 돼지가 커 나중에 새끼를 낳으면 다시 한 마리를 반환하게 했다. 이게 성이시돌목장의 시초가 됐다. 임 신부에게 ‘돼지 신부’라는 애칭도 이 때 붙여졌다.

그는 성이시돌목장에 돼지를 비롯해 양과 소, 말까지 사육하면서 한국 최대의 목장으로 키우는 등 제주 근대 목축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목장에서 생산된 양털을 이용해 옷을 짜는 한림수직을 설립해 1,300명의 젊은 여성들을 고용하며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또 제주에서 처음으로 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해 저리로 사업 자금을 조달하도록 하는 등 제주사람들의 가난 해결에 집중해 온 제주 근대화의 선구자다. 또 그는 병원, 양로원, 요양원, 유치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해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이들을 돌봐 왔다.

이처럼 60여년간 제주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온 임 신부는 현재 90세를 목전에 둔 백발 노인으로 지팡이 없인 걷기도 힘들어질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여전히 제주사람들뿐이다.

18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후원 및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 기념식’에 참석한 임피제 신부(사진 왼쪽)와 원희룡 제주지사. 60여년간 제주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온 임 신부는 90세를 목전에 둔 노령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 병원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제주도 제공.
18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후원 및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 기념식’에 참석한 임피제 신부(사진 왼쪽)와 원희룡 제주지사. 60여년간 제주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온 임 신부는 90세를 목전에 둔 노령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 병원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제주도 제공.

지난 18일 임피제 신부 기념사업회가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강당에서 마련한 ‘성이시돌 호스피스(Hospice) 병원 후원 및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 기념식’에 참석한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무료 호스피스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임 신부는 “일반 병원은 의사, 간호사가 질병을 고치는 목적이라면 호스피스는 불치병이나 암 같은 큰 병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제일 불쌍한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라며 “호스피스 병원은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 세상을 편히 떠날 수 있게 도와준다. 입원한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도 돕는 곳으로, 제주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신부는 현재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제주사회에서 남은 새로운 가난의 형태를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제주사람들에게 줄 마지막 선물로 호스피스 병원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임 신부는 1970년 4월 성이시돌 의원을 개원해 제주 서부권 지역의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 왔다. 그러다가 2002년 3월 호스피스 중심의 성이시돌 복지의원으로 재개원했고, 2007년에는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로 이전했다.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10개 병실과 20개 병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임종을 앞둔 이들을 위한 방도 따로 마련돼 있다. 병원은 현재 2,000여명 후원자들의 소액 기부와 기업 기부 중심으로 마련된 운영비를 기본으로 사료공장 및 종마사업을 운영하는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가 모자라는 부분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임 신부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호스피스 병원이 후원 회원제로 운영된다”며 “성이시돌 복지의원도 후원 회원들이 있지만 운영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힘을 모아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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